[사설]이런 반미는 '시민정신' 모독이다

  • 입력 2002년 12월 17일 18시 26분


주한 미군 장교가 서울 용산에서 20대 청년 3명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은 때가 때인지라 파장이 만만치 않다. 주한미군측은 정부에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청하고 나섰고, 이준 국방부장관은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유감의 뜻을 전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한미 양국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은 여중생 치사사건 이후 고조되고 있는 반미감정의 여파로 그런 불상사가 빚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같은 날 미군 3명이 한국인 택시 승객을 폭행한 혐의로 한국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은 사건까지 발생했으니 미군측이 느끼는 불안감은 상당할 것이다. 주한 미군이 어제부터 일주일간 장병들의 통행금지 시간을 자정(주말 오전 1시)에서 오후 9시로 앞당기는 등 ‘몸조심’을 시작했다니 불행한 일이다.

사복 차림으로 퇴근하는 미군을 흉기까지 휘두르며 이유 없이 공격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될 수 없는 비열한 범죄일 뿐이다. 이런 행동은 여중생 치사사건과 관련해 미국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시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정당한 외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수치스러운 짓이다. 경찰은 도주한 청년들을 찾아내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반미로 포장된 이 같은 범죄는 6월 월드컵에 이어 지난 주말 거리에서 다시 확인된 성숙한 시민정신을 모독하는 일탈행위이기도 하다. 그날 전국 60여곳에서 열린 여중생 추모 집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지 않은가. 시민들은 주한 미국대사관에 진입하지 않았으면서도 ‘촛불바다가 미 대사관을 삼켰다’는 외신의 표현대로 그들의 의지를 미국측에 평화적으로 장엄하게 전달했다.

미군 상대 범죄는 감정적 대립을 격화시켜 한미 양국이 원치 않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반미감정에 편승한 극소수 시민들의 잘못이 양국 관계를 손상시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은 잔뜩 꼬인 한미관계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입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빌미를 미국측에 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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