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무대 뒤의 지역감정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8시 37분


14일 오후 경남 창원에서 열린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 유세.

국민후보론, 지방활성화론 등을 주장하던 노 후보가 갑자기 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우짤랍니까(어떻게 하겠습니까)”를 두 번 외치자 순식간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부산은 뒤집어졌다고 하는데 창원은 우짤랍니까. 정말 제 손 한번 들어주십시오. 노무현이 고생 마이(많이) 안 했습니까.”

노 후보의 사투리 유세는 이어졌다. “제가 대통령 되면 이곳에서 50리 거리에 있는 진영에서 대통령이 나오는 겁니다. 한번 도와주십시오. 저는 대통령 5년하고 나면 제 고향 내려와서 살 겁니다.”

곧이어 부산으로 자리를 옮긴 노 후보는 “너무 열기가 뜨거워 노래 하나 하겠습니다”고 한 후 ‘부산갈매기’를 열창했다. 노 후보에 앞서 찬조연설을 하던 민주당 임종석(任鍾晳) 의원은 “상표는 노무현인데 점포가 마음에 안 들죠. 노 후보가 대통령 되면 완전히 새로운 정당을 만들 겁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12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부산 유세 때는 ‘노무현 부산 사람 아니다’는 피켓이 대거 등장했고, 찬조 연사로 나온 김광일(金光一)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노무현이 호남지역표를 95%나 똘똘 뭉쳐놨는데 멍청한 부산이 그래도 지원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관계자들은 “PK지역에서의 지역감정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택시 운전사들도 “누구를 지지하는지 슬쩍 물어보려 해도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조차 꺼린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동향의 지인들 끼리 모인 저녁 술자리에서는 온통 ‘경상도, 전라도’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젊은 층도 자리성격이나 분위기에 따라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게 한 고교 교사의 말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노무현과 이회창 중 누가 ‘진짜’ 경상도 사람이냐는 것이다. 오로지 ‘영남 적자(嫡子)론’이 득표전략의 초점”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일부 유권자들은 “다른 것은 다 좋은데 ‘DJ 비리’가 묻혀선 안 된다”는 소리도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지역감정은 무대 뒤로 잠시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배극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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