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마침표 찍은 '강남 러시'

  • 입력 2002년 12월 11일 17시 42분


1848년 12월 8일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던 농민 ‘요한 수터’의 제재소에서 발견된 금이 조폐국에 처음 도착했다.

이듬해 포크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캘리포니아에 양질(良質)의 금이 매장돼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1853년까지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사람들은 10만명이 넘었다. 이 가운데는 프랑스인 2만5000명과 중국인 3만명도 포함됐다. 한 해 금 생산량이 95t에 달했다.

모두들 부자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행운을 잡은 이들은 1000명도 채 안됐다. 나머지는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2001년 10월 서울도 비슷했다. 강남지역 집값이 폭등했다. 3억원짜리 아파트가 1년 만에 5억원이 됐다. 강남으로 옮기는 사람이 급증했다.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사야 했다.

153년 전의 캘리포니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적 명분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투기가 아닌 실수요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2년 12월. 집값은 정체상태다.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거래가 끊겼다. 돈을 빌려 집을 사 둔 이들이 초조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보다 정보에 민감하다. “아파트에서 지하철까지 3분이면 닿는데 신문에는 왜 5분으로 쓴 거죠? 당장 고쳐 주세요.” 부동산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이런 항의전화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다.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관할 지자체와 조직적인 ‘전투’를 하고 있다. 단지 벽면에 재건축 승인을 안 내주면 당장 아파트가 무너져 사고가 날 것처럼 협박하는 현수막을 걸어 둔 곳도 많다. 항의방문은 일상적인 일이 됐다.

캘리포니아에 ‘농업 왕국’을 건설하려다 금 때문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수터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꾼들이 모두들 금을 향해 떠나갔다. 내 재산은 완전히 노출돼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 버렸다. 나는 혼자였고 그곳엔 법도 없었다.”

집값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 우리도 어쩌면 골드러시에 휘말려 캘리포니아로 향한 10만명 중 하나가 아닐까. 그리고 수터처럼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고기정기자 k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