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자고 일어나니 유명해 졌네요”

  • 입력 2002년 12월 10일 17시 36분


《“그동안 아빠가 뭐하는 지도 모르던 딸이 최근 구단 팬북을 들고가 학교 친구들에게 자랑했다는 애기를 듣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올 시즌 프로농구 최대의 화두는 코리아텐더 푸르미의 예상밖 선전이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모 기업의 지원이 끊겼던 코리아텐더는 연고지인 여수의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마저 무산되는 바람에 시로부터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 코리아텐더는 10일 현재 공동 2위의 놀라운 성적을 올리고 있다. 난파 직전의 코리아텐더호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은 이상윤 감독대행(40·사진). 어느 날 갑자기 유명인사가 된 그를 10일 만났다.》

▽‘나를 감독으로 생각하지마’

이 감독이 코리아텐더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 6월1일. 86년 실업팀 삼성전자에 입단했을 당시 주장이었던 진효준 전 감독이 코치로 부른 것.

이 감독은 지도자가 되기 전까지 삼성전자 세일즈맨과 프로농구 삼성 썬더스 프런트로 일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 성균관대 출신으로는 박광호 전 국민은행 여자팀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실업팀(삼성전자)에 입단했을 만큼 농구실력은 괜찮았지만 상무시절 무릎 연골이 파열되는 바람에 농구를 중도포기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결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지도자로서는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어 팀 전술의 대부분이 전임 감독의 작품임을 숨기지도 않는다.

정작 그의 장점은 선수들의 감춰진 소질을 살려주는 섬세함과 자율농구. 훈련 전에 선수들이 감독을 찾아와 ‘컨디션이 안 좋으니 훈련을 빼 달라’고 요구하고 연습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선수들에게 술과 담배를 허용하는 것은 다른 팀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비싸게 팔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자’

이 감독은 월봉을 받는다. 다른 기업에서 인수할 때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자는 구단측의 배려에서다.

고액 연봉자가 수두룩한 프로농구판이지만 코리아텐더 선수 가운데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는 한 명도 없다. 인수 기업이 나서지 않아 구단이 해체되면 다른 구단에 갈 실력이 있는 선수는 몇 명 안된다. 코리아텐더는 또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전용체육관이 없어 매일 연습장소를 걱정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에릭 이버츠와 안드레 페리가 시즌을 앞두고 입국한 뒤 “우리 팀은 절대 6강에 못 간다”고 단언했을까.

그러나 억대 연봉과 전용체육관이 없어도 코리아텐더는 해냈다. 벼랑 끝에 몰린 지도자와 선수들의 투혼은 무서웠다. 시즌 개막 전 연습경기에서 10승2패를 할 때가지만 해도 다른 사람들은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했지만 이젠 아무도 ‘진짜 태풍’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헝그리 투혼이 아니라 실력입니다’

연봉 9500만원의 정낙영이 연봉 2억2000만원짜리 김영만(SK 나이츠)을 무득점에 묶고 연봉 8800만원의 황진원이 경기당 20점 이상을 넣는다. 그러다 보니 다른 선수들도 자신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비결은 피눈물 나는 연습. 비록 남의 체육관을 빌어 쓰는 눈치훈련이었지만 선수들은 나름대로 충실한 연습량을 쌓았다. 체육관 빌리기가 여의치 않으면 숙소 근처 산을 뛰며 체력을 키운 코리아텐더 선수들이다. 이 감독은 “손으로 하는 운동에 ‘의외’는 없다. 다 연습한 만큼 나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헝그리 투혼도 한 두 번, 선수들은 이제 자신들의 놀라운 전과가 진정한 실력이라고 믿고 있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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