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외신]<1>내년2월 下野 앞둔 하벨

  • 입력 2002년 12월 9일 18시 05분


《올해도 격변의 한 해였다. 외신은 매일 홍수처럼 쏟아졌다. 추리고 추렸지만 타성에 젖어 의미있는 국제뉴스들을 혹 놓치지나 않았는지, ‘다시 읽는 외신’을 통해 되짚어 본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66·사진). 무척이나 닮았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두 대통령이 내년 2월 함께 하야(下野)한다.

야당과 반체제 지도자 출신인 두 대통령은 갖은 신산(辛酸)과 옥고 끝에 정권을 잡았다. 국제적으로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 ‘동구의 만델라’로 불리며 명예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것도 똑같다. 반면 국내에서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한 것까지도….

지난달 프라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는 마치 하벨 대통령의 이임식 같은 분위기였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그를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앞 다투어 극찬했다.

정상들은 하벨 대통령이 NATO 확대에 기여한 공로를 치하했다. NATO 확대를 경계했던 러시아를 설득하는 데는 하벨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러시아가 기꺼운 마음으로 하벨의 설득을 받아들인 것은 89년 집권 이후 러시아에 ‘용서와 화해’ 정책을 펴온 그에 대한 신뢰가 작용했다.

하벨 대통령이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93년 슬로바키아와의 분리 때. 분리에 반대했던 하벨 대통령은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며 대통령을 사임했다. 그러나 체코 국민은 그를 분리된 체코의 초대 대통령으로 뽑아 사실상 분리를 추인했다. 결국 분리 절차는 ‘우아한 이혼(Velvet Divorce)’이라고 불릴 정도로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옆 나라 유고슬라비아가 분리 문제로 전화(戰禍)에 휩싸인 것과 대조됐다.

하벨 대통령은 최근 뉴욕 연설에서 “무대에 선 배우 같은 불안감이 나를 억누른다”고 말했다. 극작가 출신다운 이 말은 그를 향하는 체코 국내의 차가운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

89년 ‘무혈혁명(Velvet Revolution)’을 통해 대통령이 된 그가 제일 먼저 취한 조치는 사회주의 치하에서 압제의 상징이던 대통령 궁의 개방이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에 늘 담배를 피워 문 그의 소탈한 모습은 체코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정치의 목표는 단순하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존경을 증진하는 것이다.” 작가 출신 대통령의 단순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수사(修辭)는 국민을 매혹시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위를 너무 믿었다. 시스템으로 통치하기보다는 인치(人治)에 의존했다. 정부는 약해졌고, 정쟁과 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후계자도 키우지 않아 그가 떠난 이후 리더십의 공백이 우려된다.

하벨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체코 전문가인 프랑스인 자크 o닉은 “자기가 이끄는 정당보다 개인적 권위를 통해 통치하려 했던 것이 패착”이라고 말했다.

하벨 대통령은 뉴욕 연설에서 떠나는 아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인이 정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민주주의가 시가 될 수는 없다.”

내년 2월 함께 권좌를 떠나는 두 대통령, 과연 무엇이 닮았고 어디가 다른 걸까.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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