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선천성 뇌성마비 장애딛고 수능 치른 이진용군

  • 입력 2002년 12월 3일 19시 00분


“해냈다.” 이진용군(왼쪽)이 혼신의 힘을 다해 따낸 수능점수표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 권주훈기자
“해냈다.” 이진용군(왼쪽)이 혼신의 힘을 다해 따낸 수능점수표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 권주훈기자
이번 수능에서 만점보다 귀한 230점이 나와 화제다.

수능성적 발표가 있던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중대부고 교무실. ‘수능 6등급’을 받은 한 학생이 교사와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천적 뇌성마비로 1급 장애를 겪고 있는 이진용(李溱鎔·18)군. 진용군은 400점 만점에 불과 153점(변환표준점수 230점)을 얻었다. 35명의 반 학생들 중 28등에 불과한 기록. 객관적으로 ‘잘한 점수’는 아니지만 일부 대학의 장애인 특별전형에 응시할 기회는 마련된 점수다.

진용군은 필기나 계산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수리와 과학탐구영역은 “거의 생각나는 대로 찍었다”고 했다. 주관식 문항은 전부 빈칸으로 남겨 두었다. 대신 어려웠다는 사회탐구에서는 72점 만점에 35.5점이라는 ‘고득점’을 얻었다. 남들보다 체력이 떨어지지만 방과후 매일 4시간씩 수험공부에 매달린 결과다.

학교측도 진용군을 적극 도왔다. 올해 초에는 ‘밀대’가 없으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진용군을 위해 3학년 전체 17개 교실을 5층에서 4층으로 한층 낮췄다. 4층은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기 때문이다.

항상 정문과 가장 가까운 교실에 반 배정을 해주었고, 미술실 음악실로의 이동수업도 같은 층에서 진행되게 배려했다. 중간 기말고사 때는 양호선생님이 진용군의 답안지 작성을 도왔다. 반장 이두열군(18)은 “진용이와 함께 생활하며 장애우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어진 대신 배려와 이해의 의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진용군의 부모도 방학 때면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장애인 선진국’을 순례하며 진용군이 자라서 사회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아버지 이동훈씨(46·사업·서울 서초구 양재동)는 “특수고등학교에 진학시킬까도 했으나 ‘함께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는 일반고에 진학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진용군은 적극적인 봉사활동으로 친구들에게 보답했다. 학교에 컴퓨터가 새로 들어오면 자진해 프로그램을 깔고 고장난 컴퓨터 수리도 도맡았다. 덕분에 진용군은 다른 학생보다 2배 이상 많은 220시간의 봉사활동 점수를 받았다.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사회사업가가 되겠다는 진용군은 컴퓨터로 인쇄한 글을 통해 “대학에 가면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나 차별이 없어지는 데 일조를 하겠다”며 “내 마음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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