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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2월 3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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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통령선거전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꼭 옛날 얘기만일까 하는 또 한 차례 회의를 갖게 된다.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그 같은 ‘지서’의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여기에서 ‘지서’는 공간상의 특정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 등 연줄이나 정파에 얽매인 상황을 상징한다.
지난달 말 한 마을에 다녀왔는데 그곳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같이 똑같았다. 이번 선거에서 누구는 절대 안 된다, 그러니 누구를 찍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너나없이 마음속에 ‘지서’ 하나를 만들어 놓고 여기에서 내리는 행동지침에서 벗어나면 마치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런 도그마에 빠져 있는 지역이 한두 군데가 아닐 것이다. 후보의 자질과 정견에 따른 합리적 판단 대신 배타적 지역주의가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학연이나 혈연도 배타성을 갖기는 마찬가지이다. 과거 누구를 찍으라고 ‘지서’에서 방향을 제시해 주던 것과 달라진 게 전혀 없다는 말이다. 후보들이 먼저 달라졌어야 하는데 과연 어떤가. ‘OO의 아들’이니 ‘XX의 자존심’이니 하면서 교묘하게 지역감정을 건드려 ‘지서’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는 주체가 후보들이다.
‘자유투표’라는 용어가 있다. 국회의원들이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당론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소신에 따라 하는 투표다.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는 않았지만 잘만 운영하면 후진적이고 폐쇄적인 우리의 정치구조를 개선해 정치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필자는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도 이 같은 자유투표의 정신이 살아 숨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같은 지역이라고,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같은 성씨라고 표를 찍는 수준 낮은 투표 행태는 청산돼야 한다. 후보마다의 정책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나라와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지 유권자들은 냉정하게 고민해야 한다. 어젯밤에 열린 후보간 TV토론은 하나의 소중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선거가 감정에 따라 좌우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정치인들은 유권자를 우습게 본다. 선거 때만 머리를 숙이고 선거가 끝나면 유권자에 군림하는 오만을 고치려면 어느 지역 출신이라 당연히 당신을 찍어주리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
민주주의의 매력은 일사불란(一絲不亂)이 아니라 ‘다사불란’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쪽으로 쏠린 몰표보다는 나눠진 표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또 안으로 굽는 팔보다는 밖으로 뻗치는 팔이 더 건강해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는 전라도땅에서, 경상도땅에서, 충청도땅에서 모두 ‘마음속의 지서’를 깨부수는 ‘반란’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선거다운 선거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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