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원 교수 “정부조직, 일괄적 축소는 무리수”

  • 입력 2002년 11월 18일 17시 48분


선정원 교수
선정원 교수
대통령 선거철마다 ‘작은 정부’와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의 권한 축소’가 절대진리처럼 거론된다. 하지만 한 정권이 임기를 마칠 때쯤에는 ‘큰 정부’로 돌아가 있고 대통령과 비서실의 권한은 오히려 강화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공법학회(회장 김효전·金孝全 동아대 교수)는 16일 ‘신정부 출범에 즈음한 정부조직의 개편방향’이란 주제로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와 대통령의 일부 기능을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또 말로는 ‘작은 정부’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회문제의 통합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잃지 않으려다 거꾸로간 김대중(金大中)정부의 모순된 태도가 지적됐다.

발표자로 나선 선정원(宣正源) 명지대 법정대 교수는 “지금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 행정부는 혼자 모든 통합조정작용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현 정부는 행정부내에 자기완결적인 통합적 조정부처를 가져야 한다는 낡은 생각에 사로잡혀 국무총리와 국무조정실을 두고 또 기획예산처를 두고 다시 부총리제를 두는 옥상옥의 구조를 만들면서도 오히려 조정력의 부족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정력을 구실로 도입된 부총리제와 장관급으로 격상된 국무총리실장제에 반대하고 “실무형으로 전환된 국무총리나 청와대 비서실이 이를 담당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제처 조정찬(曺正燦) 심의관은 “누가 조정력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신속한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들이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선교수는 일괄적인 정부기능 축소에는 반대했다. 그는 “업무가 중복되는 경제부처가 많고, 자치행정의 통제조직인 행정자치부나 교육인적자원부도 과잉조직상태에 있어 축소 통합이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여성의 지위보호를 위한 여성부는 계속 강화해야 하고, 급격한 노인인구의 증가를 다룰 조직도 새로 필요하며, 지나치게 약학 의학 중심의 인력에 편중된 보건복지부에 제도설계능력을 지닌 (인문사회과학계) 인력도 대폭 충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교수는 또 제도개선이나 고급 인력양성과 같은 국가의 당면 핵심과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실질적 통제능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는 기술혁신의 경쟁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제도혁신의 경쟁”이라며 “제도설계를 담당하는 규제개혁위원회를 확대개편해 제도개혁위원회로 만들고 정책과 입법에 대한 단순억제기능에 그치지 말고 기획설계기능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대학의 경우 국립대를 제외한 사립대는 정부로부터 재정지원 규모도 낮고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도 낮아 정책과 입법의 주도능력이 떨어진다”며 “초중등학교와 대학의 문제를 혼합한 교육인적자원부 조직은 이질적인 과제들로 인해 이미 적실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부로 환원시키고 대통령직속의 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교수는 “미국도 급격하는 변화속에 관리예산처, 규제개혁실 등을 새로 설치해 중요한 개혁기능을 수행해왔다”며 “한국의 당면한 상황에 비춰봤을 때 제도개혁위원회와 고등교육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으로 설치하고 이 두 조직이 기존의 기획예산처와 함께 새 정부의 정책과 입법에 대한 기획설계기능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구철(姜求哲) 국민대 법대 교수는 “선교수의 제안은 국제경쟁력 제고란 관점에서 참신한 것이나 새로운 기구의 신설은 ‘작은 정부’의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신중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