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 불법통과 법안 재심해야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8시 52분


연말 대선을 의식하느라 부실과 파행으로 얼룩졌던 올 정기국회가 결국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 법안통과에 필요한 의결정족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수십건의 법안을 통과시켰으니 명백한 무효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국회지도부는 회의장 주변에 있었던 의원까지 출석으로 간주해 법안통과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니 하늘 아래 이런 해괴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복도에 많은 의원이 있어 법적 문제는 없다’고 한 어느 정당간부의 궤변이 오히려 위법사실을 시인해 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올 정기국회는 민생 법안들을 토의도 없이 벼락치기로 처리하고, 이 과정에서 선심성 법안들을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또 예산안도 나눠먹기식으로 제멋대로 처리해 국민에게 ‘이런 국회가 왜 있어야 하는가’라는 심각한 의문을 던져주었다.

여기에 사회봉을 잡은 의장 부의장이 일사천리로 법안을 통과시키느라 의결정족수가 부족한 것도 몰랐다니 어이가 없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의사일정표를 보느라 의석을 바라볼 틈도 없었는지 모르지만 기가 막힌 일이다.

뒤늦게라도 정족수 미달을 알았다면 이미 처리된 법안을 무효로 돌리고 다시 처리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족수 미달로 산회를 선언하면서 그때까지 이루어진 잘못은 그대로 두었으니 과연 이런 국회를 입법부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아무리 대선이 있는 해이고, 또 이 때문에 회기가 단축됐다고 해도 의원들이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 할 법안심의조차 이처럼 건성으로 해서는 안 된다. 선거대책이니 후보단일화니 탈당이니 하며 본연의 임무를 팽개치는 사이 국정은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정권 말에 흐트러진 국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차기정부와 국민의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무효법안을 다시 의결해야 한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어물쩍 넘기곤 하던 우리 국회의 구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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