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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3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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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궤병존(兩軌倂存).’ ‘서로 다른 두 궤도를 함께 한다’는 뜻의 이 글귀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생전에 직접 쓴 것으로 푸둥경제특구의 발전 방향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덩은 중국식 계획경제와 시장경제, 과거와 현재, 외부와 내부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이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덩은 신신당부했다. ‘결단력 있게 추진하되, 자만하지 말라’고.
그래서인지 ‘경제특구의 성공한 모델’로 부러움을 사고 있는 현재의 푸둥을 개발하기까지 중국은 요란한 대외 행사 하나 치르지 않았다. 이달 중순이면 푸둥특구 인프라의 ‘꽃’으로 불리는 푸둥중심가∼푸둥공항간 34㎞의 자기부상철도 건설이 완공된다. 그런데도 축하 현수막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하다.
한국은 어떤가. 벌써 동북아 허브(hub)가 다 된 듯한 분위기다. 정부는 여러 번에 걸쳐 대대적인 계획을 발표했고 지자체들은 “우리도 끼어들겠다”며 야단이다.
그러나 정작 경제특구 법안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
국회는 지난주부터 법안 기초 심의에 들어갔지만 재경위 산하 법률안소위 위원들은 서로 다른 이유를 내세우며 상임위에 상정도 않은 채 마냥 표류시키고 있다. 이 상태론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기 어렵다. 일부 지역구 의원들의 무리한 주문도 문제지만 “이런 법으로 어떻게 외국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겠느냐”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심의에 참여중인 한 여당의원조차 “애들 장난도 아니고 국가의 명운(命運)을 좌우할 수 있는 법안을 이렇게 준비 없이 만든 것은 처음 본다”고 기자에게 털어놨다.
법안을 꼼꼼히 들여다보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병원 학교 문화시설 등 외국인들을 위한 인프라를 턱없이 부족하게 잡은 것은 둘째 치더라도 ‘민자유치와 개발이익’으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대목에서는 기가 찬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한데도 막연히 민자유치 방안만 제시하고 있다. 외국 투자자들이 가장 큰 애로를 느끼는 노사분규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자세다.
당초 영종도 특구만을 염두에 두었다가 ‘왜 수도권은 되고 영호남은 안 되느냐’는 정치논리에 등 떠밀려 부산과 전남 광양도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 이러다간 전국이 경제특구가 될 지경이다.
이처럼 법안이 누더기가 된 것은 그동안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미 예고됐던 일인지 모른다. 올해 6·13 지방선거 직전 김대중 대통령과 경제각료들이 느닷없이 경제특구 건설을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7월29일 특구방안을 확정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그것도 대선을 두 달 앞둔 10월17일 법 시안을 제출했다. 선거를 의식한 졸속 추진이라는 의혹은 물론이고 ‘자만하지 않는 충분한 준비’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특구 건설은 우리나라가 중국의 잠재력과 일본의 ‘규모의 경제’ 사이에 끼는 넛크래커(nut-cracker) 상태를 돌파하기 위한 최우선의 정책과제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몇 달간의 벼락치기로 준비될 일이 아니다. 선발자의 시행착오와 강약점을 철저히 분석해 계획성 있게 추진하는 후발자의 대안적 치밀함이 요구된다.
푸둥지역 최고책임자인 저우위펑(周禹鵬) 상하이시 부시장이 최근 사석에서 기자에게 한 말을 곱씹어 보게 된다. “우리는 3세대를 목표로 푸둥을 아시아의 허브로 건설하려고 한다. 이제 겨우 반(半)세대가 흘렀을 뿐이다.”
반병희 경제부 차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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