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59…1929년 11월 24일 (10)

  • 입력 2002년 10월 28일 18시 20분


희향은 부엌에서 짚과 새끼줄을 가지고 와, 내장을 뱃속에 다시 집어넣고 암탉을 짚으로 둘둘 만 후 양끝을 묶었다.

“갖다주고 와라”

“뭐라꼬?”

“갖다주고 와라” 희향은 똑같은 말투로 다시 한 번 말했다.

“어데다?”

“삼나무 집이다”

“……”

“너거 형제가 태어났다”

우철은 턱을 약간 치켜들고 짚 꾸러미를 보았다.

“갖다주고 와라” 세 번째였다.

“…내일, 대회 있다”

“뛰어가면 5분도 안 걸린다 아이가? 엄마 대신 갖다주고 와라”

우철은 짚 꾸러미를 받아들고 어머니에게 등을 보이고 걷기 시작했다. 이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금줄에 고추가 달렸는지 잘 보고 와라”

휭-휭-, 돌아갈 곳 없는 바람이 갈 곳 없는 여자에게 불어닥친다. 휭-휭-, 바람과 여자가 서로에게 몸을 기대듯 멈춰 서서 여자의 아들을 배웅하고 있다. 휭-휭-, 아들의 등의 보이지 않자 여자는 돌 도마에서 칼을 집어 바람에 펄럭이는 치마를 눌렀다.

휭-휭-, 북풍이 무명 저고리 깃으로 파고든다. 휭-휭, 우철은 강 앞에 우뚝 서 있다. 미루나무와 자기의 그림자가 얼음 위에 길게 늘어져 있다. 끼-익 하고 삐걱이는 소리를 낸 것이 나무인지 자기인지 알 수 없었다. 우철은 걸음을 내디뎠다. 삼나무집 쪽이 아니라 교동 쪽으로, 그리고 좁은 언덕길을 올라갔다. 해질녘의 인기척 없는 조용한 언덕길이 한없이 길게 뻗어 있었다. 집집마다 문에 ‘입춘대길’이니 ‘건양다경’이라고 쓴 종이가 나붙어 있다. 달필도 있거니와 악필도 있고, 먹이 짙은 글씨도 있고 옅은 글씨도 있다. 우철은 양반집 대문 앞에 있는 마상대(馬上臺)로 눈길을 돌렸다. 얼마 전 우근이와 산책할 때, 이건 뭐야, 라고 물어서 양반이 말을 탈 때 밟고 올라가는 받침대라고 대답했는데, 나야말로 지금 말을 타고 어디론가 달리고 싶은 기분이다. 깨갱 깽깽! 어느 집인가 마당에서 개가 싸우고 있다. 깨갱 깽깽! 어느 집 부엌에서는 저녁 된장국과 마늘 장아찌 냄새가 풍겨온다. 언제부터였나, 가족끼리 밥을 먹는 것이 고통스러워진 때가.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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