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영관/정부, 北-美에 영향력발휘를

  • 입력 2002년 10월 18일 18시 44분


북한이 핵 개발을 스스로 자인하고 나섰다. 이는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의 정면 위반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조성되어온 남북 및 북-일, 북-미간 대화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이 난국을 해결할 것인가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저지하는 과정 자체가 한반도 평화를 깨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게 딜레마다.

▼北핵개발 저지가 최우선▼

무엇보다도 우리 정부나 국민은 94년 상황과는 달리 우리의 외교적 역할이 대단히 중요해졌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94년에는 우리가 북-미 사이에서 외교적 역할을 할 여지가 적었다. 우선 92년 후반 대선 직전 섣부른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 결정으로 남북간의 모든 대화채널은 끊어졌고, 이에 따라 93년 들어 핵 협상의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역전되었다. 북한의 핵 개발 자인으로 미국 정부는 당분간 북한과 대화하기 힘든 상황이 돼 버렸다. 미 정부는 북한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고 발표했지만 주류를 이루는 강경파 정책결정자들은 군사적 실력행사와 같은 대안을 깊이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그러한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 북한에 대해 여러 가지로 경제적 외교적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도 이제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마저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 의회에서 나오고 있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도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미국과 북한간의 대화단절로 생긴 외교적 공백을 우리 정부가 메워 나가면서 시간을 벌고, 미국과 북한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주도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려있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생각해야 할 점은 남북경협의 문제이다. 우선 며칠 후 한국에 도착하는 제임스 켈리 미 특사는 아마도 북한에 대한 제재의 일환으로 남북간에 진행되고 있는 경협사업의 중단을 요구할지 모른다. 이 점에 대해 정부는 대단히 현명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만일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경협을 중단하게 되면 남북간의 모든 대화채널은 끊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미국에 이어 한국마저도 북한과의 외교적 영향력 행사의 채널이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2∼3년 동안 포용정책을 통해 열어온 대북 대화 채널을 하루아침에 포기할 경우 북한문제는 94년과 마찬가지로 극단적 실력행사로 푸는 방향으로 성큼 다가서게 될 것이다. 이는 북한 문제를 외교를 통해 풀겠다는 미국 스스로의 입장에도 반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남북경협은 북한이 먼저 그만두자고 나서지 않는 한 계속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 정부는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 핵 문제를 남북간의 비핵화 공동선언과 6·15 정상회담의 양자적 틀 안에서 협상하는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다자기구 차원과는 별도로 남북 양자 차원에서 교섭을 시작하면서 이를 통해 미국이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조치를 확보하고, 또 북한에 대한 미국의 보상을 간접적으로 유도해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는 미국과 북한 양측의 체면을 살리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결국 미국과 북한이 협상테이블로 다시 돌아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경협 중단엔 신중해야▼

우리 정부가 적극적인 외교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한 외부적 여건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미국도 이라크전, 반 테러전에 북한전까지 추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일본도 대북 관계 개선의 의지가 상당하고 국제여론도 우리 정부의 주도적 평화외교를 지지할 것이다.

아마도 가장 힘든 장애물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올지도 모른다. 대선후보들은 민족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국론통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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