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영/´노벨상 로비´ 정말 있었나

  • 입력 2002년 10월 10일 18시 15분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노벨평화상을 위한 조직적인 로비가 있었다는 보도는 당혹감과 실망감을 안겨준다. 재작년 이맘때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외신 보도는 우리 모두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안겨줬다. 이 상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을 반독재 투쟁으로 일관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 마침내 국민의 선택으로 대통령이 되고,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켜 남북화해의 길을 열어 놓은 김 대통령이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 노벨평화상까지 받게 된 것을 온 국민이 진심으로 축하하고 자랑으로 여겼다. 그때의 감격과 기쁨이 컸던 만큼 지금 보도되는 조직적인 로비설은 그 진위를 떠나 매우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인 증거는 없지만…▼

노벨평화상은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니다. 조직적인 로비를 통해 받아오는 상은 더더욱 아니다. 수상자가 국제적으로 큰 존경을 받고 엄청난 무게를 갖는 이유도 이 상이 갖는 역사적 전통과 선정과정의 공정성과 객관성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보도된 내용대로 조직적인 로비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로비설 보도를 접하면서, 그 후의 여러 상황전개와 관련해 당혹감을 느끼게되는 대목이 있음을 숨길 수는 없다. 조직적인 로비설의 내용과 김 대통령이 취임 후에 편 여러 가지 정책, 특히 대북정책이 밀접한 관련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그의 험난한 정치역정 때문에 국내에서보다 국제사회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김 대통령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 대통령이 평소 마음 속으로 노벨평화상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전혀 나무랄 일은 아니다.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섰다면 그 또한 탓할 일도 아니다. 다만 혹시라도 자신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과 나라를 수단으로 삼는 그런 정책을 펴 왔다면, 그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김 대통령이 자신의 노벨평화상 수상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그토록 무리하게 서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근자에 불거진 4억달러의 수수께끼도 남북정상회담과는 관계가 없는 것인지를 철저히 따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런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구체적 증거로 나온 것은 아직 없다. 정서적으로는 근자에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는 4억달러 대북 뒷거래가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의 꿈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 믿고 싶다. 그렇지 않고 만에 하나 4억달러 대북 뒷거래가 노벨상이란 목표를 향한 원대한 프로젝트의 한 실천방안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국민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심판 받을 일이다. 이러한 사실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질 경우 우리나라의 체면과 국민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국민은 이 모든 의문점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대통령의 신상이나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미 사적인 영역이 아니다. 국민의 지도자로서 그의 말 한마디와 행동거지는 국민의 공적인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는 것도 대통령 개인의 문제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오해 없도록 명쾌한 해명을▼

김 대통령으로서는 명예로운 노벨상 수상이 조직적인 로비에 의한 것이라는 보도 자체를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이 청와대의 반응처럼 한 개인의 근거 없는 문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욱 불쾌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민은 4억달러 대북 뒷거래설과도 관련이 있을 법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보도된 내용의 진위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 대통령이 받은 명예로운 노벨평화상이 불필요한 잡음과 오해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 권위가 손상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임기 말에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럴수록 김 대통령은 역경을 헤쳐온 큰 정치인답게 모든 것을 버리는 자세로 제기된 의문점들에 대해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앞으로도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으로 남게 되기를 바란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다. 당사자가 진실을 말할 때와 다른 사람에 의해 진실이 밝혀질 때의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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