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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7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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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을 감청하는 제5679부대가 6월13일 북한 경비정의 장시간에 걸친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의도에 대해 국방부 정보본부에 △연례 전투검열차원 △월드컵과 국회의원 재·보선과 관련한 한국 내 긴장고조 의도 △우리 해군 작전활동 탐지 의도 등으로 보고했다. 그런데 국방장관이 두세 번째를 삭제한 후 전파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내용이 4일 국회의 국방위 국감현장에서 폭로됐다. 바로 ‘장관의 도발징후 묵살’ 의혹의 발단이다.
▼진실은 하나, 반드시 밝혀야▼
이 문제가 갖는 폭발력은 대단하다. 6월29일 서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에 우리 서해함대의 고속정과 그 승조원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았고, 이로 인한 우리의 아픔과 분노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이 문제에 관한 전·현직 국방장관 및 국방부 관계자와 5679부대장 및 그 부대 관계자들의 주장이 서로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국방부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이를 조사해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이다. 국방부에서 이미 특별조사팀을 구성해 조사에 나섰다고 하는데, 차제에 관련자들의 직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진실을 밝혀내야만 한다. 오로지 실체적 진실만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시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사에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의혹은 바로 당시 장관이 대통령과 햇볕정책을 의식하고 거기에 폐가 될까 염려해 북한 해군의 해상 도발 징후를 보고받고도 묵살했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비록 현직 장관이 아니라고 해도 과거의 직속 상관을 조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반대로 비록 지금은 해임되었다지만 한 정보부대의 최고위 지휘관이 ‘군사비밀보호법’에 저촉될 것임을 능히 알면서도 과거의 직속상관을 공개적으로 공격할 정도로 ‘정의감’을 발동한 일을 조사하기란 또 얼마나 난처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또 비록 군인들이 인내와 복종에 익숙하다고 해도 정권 담당자들이 군인들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바보짓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래 참아온 군인들의 분노는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엄청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민은 분노한 군대가 아닌,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강력한 군대를 가짐으로써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바로 이것이 군대의 존재의의인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군대는 그러한 존재의의에 합당하다고 할 만큼 강한가. 즉 우리 “국군이 강한 군대인가?”라고 묻는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필자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 주저하게 된다.
바로 국방장관의 ‘서해도발 징후 묵살’ 의혹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장관과 이를 폭로한 정보부대장의 주장 중 어느 쪽이 진실이냐를 떠나서 상관과 부하가 서로 불신하는 군대, 군 수뇌들의 사명감 부족과 지도력의 빈곤으로 직계 부하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조직은 이미 ‘상하 일치단결해 어떤 역경도 극복하고 승리하는 군대’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저한 조사 엄중문책을▼
한 군대의 질은 그 군대의 지휘관의 질이 반영된 것이다. 한 군대가 강하다 함은 그 군대의 간부들의 도덕성과 사명감, 그리고 능력이 뛰어남을 뜻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그러한 인재를 찾아 지휘관으로 보직하는 능력 또한 임명권자의 도덕성과 사명감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 군의 이 사태는 궁극적으로 대통령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니 이제, 철저한 사건조사와 엄중한 문책으로 공명정대한 인사를 단행해 군 기강을 확립하고 사기를 올림으로써 임기 말 유종의 미를 거두는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우리 모두를 위해 다행한 일일 것이다.
민병돈 전 육군사관학교장·예비역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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