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

  • 입력 2002년 10월 4일 17시 22분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웬델 베리 지음 정승진 옮김/240쪽 8000원 양문출판사

인간은 보다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컴퓨터를 만들었고, 그것을 제멋대로 부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갑자기 컴퓨터가 멈춰 버렸다고 상상해보라(물론 이미 이런 ‘재앙’을 경험한 독자도 있을테지만).

바이러스 따위의 침투를 받은 개인용 컴퓨터가 멈춰 버리는 것은 그나마 약과다. 최소 범위의 피해자는 컴퓨터 주인에 불과하니 말이다. 때로 은행 전산망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수십명의 고객들을 은행에서 하릴없이 서성이게 만들 때도 있지 않은가. 하물며 증권 거래 같은 것에 이용되는 대형 서버가 고장나 버리면?

많은 사람들은 이제 필기도구를 이용해 종이에 글을 쓰는 일이 무척 낯설다. 글이 잘 써지지도 않는 것 같다. 누구의 말처럼, 손가락 끝이 키보드를 인지할 때 비로소 뇌가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도 된다.

그러나 웬델 베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컴퓨터를 가지지 않으려는 최종적이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가지고 글을 쓴다면 나나 다른 누군가가 연필을 가지고 쓰는 것보다 훨씬 잘 쓰고, 쉽게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나는 믿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생활과 문명이 이전에 비할 바 없이 급격한 발전을 이룬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인류의 삶은 아직 피폐하다는 것.저자는 그 어떠한 진보든 자연과 인간 공동체의 건강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불합리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일축해 버린다. 그에게 있어 ‘컴퓨터’는 문명의 이기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는 컴퓨터를 화두로 산업사회의 부작용을 고발하며 환경 문제를 끌어낸다. 궁극적으로는 일상적인 살림경제를 포괄하는 경제 체제 자체를 변화시키는 철저한 실천적인 행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웬델 베리는 미국의 영문학자이자 시인으로 고향 켄터키에서 전통적인 방법의 농사를 고집하며 살아가는 농부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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