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 입력 2002년 9월 27일 17시 30분


애절함보다는 따뜻함으로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인 마종기. 사진제공 문학과지성사
애절함보다는 따뜻함으로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인 마종기. 사진제공 문학과지성사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마종기 지음/112쪽 5000원 문학과 지성사

9월이 중순을 향해 가고 있을 무렵, 마종기 시인이 귀국을 하면 늘 어딘가 여행을 하곤 하였던 터라, 김병익 홍성원과 함께 넷이 강화도에 갔다. 강화도는 홍성원의 낚시터이기도 하여 그가 길잡이가 되었는데, 늘 그렇듯이 전등사와 전쟁사 박물관 같은 곳을 다녔고 전등사에서는 오미자나 솔잎차를 마시며 노천에 앉아 있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날씨는 맑고 햇살은 가을답게 따끈따끈해서 벼가 잘 익다 못해 논에서 밥이 될 것 같은 느낌이 저절로 일었는데, 그런 햇빛이 있고 맑은 바람이 있고 친구가 있으니 더 바랄게 없다는 이구동성이 기분을 한층 더 돋우었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기분이라는 건 나날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어서, 모든 경우에 우리는 다소간에 기분의 지배를 받게 마련인데, 사람을 사귀거나 시를 쓰는 데 있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떤 영혼들은 사람 사귐이나 작품에서 무슨 참된 것을 느끼지 못하면 좀처럼 동행을 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나 그의 언어의 성질을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시라는 게 무슨 참된 것의 충격을 경험하는 드문 순간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시를 이야기할 때는 참된 것의 함량을 한껏 요구하고 싶고 또 그것이 필경 이 세상에서 시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에서 참됨이란 물론 마음(정신과 감정)의 차원과 작품의 차원을 아우르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마종기의 시에서 ‘심정적인 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늘 따뜻함과 정다움에 물들어 있다.

‘말과 숨결로 나를 방문한 온유여/ 언 손을 여기 얹고 이마 내리노니/ 시끄러운 사람들의 도시를 지나/ 님이여 누군가 어깨 떨며 운다/ 그 겸손하고 작은 물 내게 묻어와/ 떠돌던 날의 더운 몸을 씻어 준다’(‘溫柔에 대하여’ 2연).

이러한 성질이 그를 의사가 되게 했겠지만 그러고 보면 시 또한 인술(仁術)임에 틀림없다. 예술은 인술이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산 사람으로서 자기의 모국어를 이만큼 부려 쓰기도 쉽지 않겠지만 또 한편 한국어에 대한 서먹서먹함도 끼어 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그는 흔히 모호한 표현으로 시성(詩性)에 다가가려고 하는 듯이 보인다.

예컨대 ‘목련 혹은 미미한 은퇴’라는 작품에서 ‘이제 내 짐도 내려놓고/ 내 하던 일도 내려놓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일상의 일탈/ 국경의 저쪽에 당신 침묵이 보인다/ 죽은 꽃나무 짊어지고 산정을 향하는/ 당신 연민의 옆 얼굴이 밝아온다/ 피 흘리는 미혼의 집에서/ 몸부림하던 문들이 열린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말과 글이/ 당신의 몸에 눌려 질식하고/ 땅과 바다는 다 걷혀 가버렸다’ 같은 대목이 그렇다.

그러나 그가 ‘추운 날의 질문’에서 말하듯이 ‘완전하다는 것도 분명하다는 것도… 보이지않’는 꿈꾸기의 유혹이 있으니 시는 계속 씌여 질 것이다.

그런데 그가 다른 시인과 다른 점은 그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는 경계인(境界人)이라는 점이 아닐까 한다. 언어에 있어서도 그렇고 장소에 있어서도 그렇다. 나로서는 그 지점이 그의 독자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는 밭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장차 그의 공부와 노역이 낳은 시적 영역으로 즐겁게 동행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정현종 연세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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