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곽민영/부러운 독일선거

  • 입력 2002년 9월 24일 18시 22분


베를린 분데스타크(연방 하원) 건물은 투명한 유리 돔으로 유명하다. 옥상의 돔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면 의사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신들을 위에서 내려다볼 국민을 떠올리며 유리처럼 투명한 의정을 펴겠다는 다짐의 상징이다.

독일 정부의 초청으로 22일 치러진 독일 연방하원 선거현장을 보름 동안 돌아봤다. 독일의 선거유세는 철저하게 유권자 중심으로 진행된다. 높은 단상에 정당 관계자들이 도열한 가운데 미리 준비된 원고를 낭독하며 ‘그들만의 축제’로 끝나곤 하는 우리의 경우와는 많이 달랐다.

시민들은 가족,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유세장을 찾는다. 유세 전에는 항상 콘서트가 열리는데 시민들은 밴드 연주와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고 때로는 춤을 추기도 해 유세현장은 마을 축제를 방불케 한다.

특히 소수자 권리 옹호에 앞장서온 녹색당의 유세는 인상 깊다. 무대 바로 앞에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별도 좌석을 마련하고 수화(手話)요원을 배치하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레나테 퀘나스트 농업장관은 내내 이들 사이에 앉아 허물없이 음료수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시민들은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유세장을 찾기도 하지만 반대하기 위해서도 찾는다. 유세장 뒤편에는 해당 정당과 후보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쉽게 볼 수 있다. 에드문트 슈토이버 후보의 유세장에는 젊은이들이 중심이 돼 그를 히틀러나 변기통에 비유한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으며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유세장에는 경제 실정을 탓하는 할아버지 시위대가 등장하기도 했다.

유권자들의 참여 의식이 높다 보니 투표율은 평균 80%를 넘는다. 전체 투표의 10%가 아무런 감시 없이 집에서 하는 우편투표로 이뤄지지만 부정투표 시비가 인 적은 없다. 그런데도 독일인들은 투표율이 저조하다고, 정치적 무관심이 문제라고 걱정이 많다. 새삼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 없이는 정치 선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되돌아보는 계기였다.

베를린〓곽민영기자 국제부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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