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우룡/가상광고 3不可論

  • 입력 2002년 9월 18일 18시 35분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미디어이지만 미디어를 움직이는 것은 광고다. 광고수입이 없다면 신문사와 방송사는 곧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광고는 미디어의 버팀목이지만 또한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경제 수단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광고는 상품의 정보를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러나 광고의 폐해도 적지 않다. 허위, 과장, 기만광고가 그것이다. 때론 광고는 건전한 소비생활을 유도하기보다는 과소비와 낭비를 부추긴다. 방송사의 과다광고, 간접광고, 부당광고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방송위원회가 텔레비전에 가상광고까지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방송법에도 위배▼

방송위는 스포츠 중계에 한해 중계시간의 3% 범위 안에서 가상광고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방송법 시행령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 마디로 스포츠 경기를 중계할 때 중계 프로그램 안에다가 3% 내의 광고를 추가로 더 낼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이다.

가상광고란 전자적 영상합성 기술을 이용해 방송 프로그램이 제작되거나 중계되는 장소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광고를 말한다. 컴퓨터로 가상(virtual)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카메라가 상하좌우로 움직여도 이미지는 정해진 자리에 고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컴퓨터 그래픽 합성과는 구별된다. 예를 들면 방송 프로그램이 어떤 경기장을 보여줄 때 화면 속에 보이는 경기장 주변 입간판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광고 메시지를 컴퓨터로 제작해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이중화면으로 처리해주는 것이 가상광고다. 가상광고가 도입되면 시청자들은 안 봐도 될 광고를 더 보게 된다. 스포츠 중계에 국한한다고 하지만 이미 모든 스포츠 중계에는 중간CM이 나가고 있는데 여기에 또 가상광고가 방송시간의 3%나 추가된다는 것을 뜻한다.

방송위가 밝힌 가상광고 도입 취지 중 어느 하나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첫째, 국내 스포츠 경기를 다른 나라에 중계할 때 국산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스포츠 중계 가운데 다른 나라가 받아내는 국제적인 경기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둘째,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라고 한다. 방송의 광고시간을 늘리거나 새로운 형식의 광고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마다 내세우는 명분은 ‘방송사의 경영난 타개’ 아니면 ‘디지털전환 재원 마련’이다. 경영난 타개나 디지털전환 재원조달은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자본시장을 통해, 그리고 정책적 결단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 시청자의 볼 권리를 담보로 해서는 안 된다. 방송시설을 디지털화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방송위는 이미 지난해 KBS 제2FM의 광고방송을 승인했다. 매년 1000억원 안팎의 흑자를 내고 있는 국가기간방송이 100억원 안팎의 수익 증대를 위해 청소년 매체를 상업화한 것이다. 디지털로 전환할 자금이 없다고 노래해 온 공영 MBC는 월드컵 중계로 수익이 좀 나자 노사가 함께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방송위가 내세우는 세 번째 논거는 편법적인 간접광고와 이로 인한 방송사의 불법 수익 방지다. 현재 편법에 의한 간접광고가 많은데 가상광고를 도입하면 불법적인 수익이 사라지게 된다는 논리다. 지금 우리 방송계에 편법에 의한 불법 수익이 많다면 방송위가 철저히 규제를 해야지, 제 할 일은 하지 않고 불법을 합법화하기 위해 새로운 형식의 광고를 도입하겠다니 한심스럽다.

▼´시청자 복지´ 어디로▼

현행 TV광고시간은 프로그램 시간의 10% 이내로 돼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은 방송시간의 1할만 광고시간에 할애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토막광고, 캠페인, 1D광고, 이어서 카드광고, 시보광고 등 모든 광고시간을 계산해보면 전체 방송시간의 거의 17%에 이른다. 여기에 또 광고시간을 늘리겠다니, ‘시청자 복지’는 어디로 갔는가.

방송법 제73조 1항에는 ‘방송사업자는 방송광고와 방송프로그램이 혼동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가상광고는 프로그램 속에 광고를 표시함으로써 분명 이 법을 위반하게 된다. 게다가 가상광고는 중간CM 허용과 광고총량제 도입으로 가는 과도기적 조치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시청자 권익을 위해 방송사의 과도한 상업주의를 규제해야 할 당국이 오히려 방송사 수익증대에 앞장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상광고에는 리얼리티가 없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정책과학대학원장·언론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