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24…백일 잔치 (9)

  • 입력 2002년 9월 13일 18시 19분


“어머니, 몸 씻어 주라.”

“이제 여섯 살이니까 너가 씻어라. 나중에 등은 씻어주마.”

지금 탕에서 나갈 수는 없다, 저 여자에게 알몸을 보이게 된다, 나는 보고 있다, 저 여자의 알몸을.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보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깔뿐이다. 검정, 하양, 분홍, 하양, 분홍, 검정, 하양, 빨강, 빨강, 빨강!

여자는 비누 거품으로 젖은 손바닥을 보았다. 두근 두근 이 아이의 등을 씻어주고 싶다. 저 여자가 죽으면, 내가 이 아이의 어머니가 될 테니, 씻어주어도 이상하지 않다. 소원아, 어머니가 잠자리 크레용 사줄게. 하양, 검정,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황록, 황토, 주홍, 회색, 분홍, 하늘색,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약산 장군(김원봉)은 축지법을 쓸 줄 아니께.

정말이가?

아이구, 내가 어디 거짓말 하는 거 봤나? 언제였더라, 김원봉이 귀향을 했다고 누가 밀고를 해서 형사들이 허둥지둥 감천리 집에 가봤는데, 집안에는 아무도 없고 파리가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카더라. 그래 그때부터 형사들 사이에서 약산이 파리라고 안 불리나.

효길 할배, 약산 장군이 어떻게 생겼습디까?

피부는 가무잡잡하고, 남자답고 단정하게 생겼는데, 키는 훌쩍 크고….

여자들이 그냥 안 놔두겠네.

아니지, 여자는 멀리 한다. 약산은 술은 마셔도 여자는 본 체도 안 한다.

스물일곱 살이 됐는데도, 처자식이 없으니께네.

우철 아버지, 약산 장군 관상은 어떤가?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지만 동아일보에 실린 얼굴 사진을 보아, 눈이 맑고 눈썹이 수려하니까 총명. 시선이 평정(平正)하니 강직하고 마음이 반듯하고. 얼굴의 균형이 바르니 장래가 유망한 훌륭한 인물이다.

김원봉, 사명대사, 김종직, 밀양이 낳은 삼대 위인이다. 어이, 우철아, 사명 대사가 누군지 아나?

압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고 왜적을 무찔렀으며 전란이 끝난 후에는 스스로 왜에 건너가 붙잡힌 동포를 3천 명이나 데리고 온 분이다. 김원봉이 소년 시절을 보낸 표충사는 사명대사를 기리고 있다.

김종직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썼다는 이유로 훗날, 무오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한 분이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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