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스테디셀러]´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입력 2002년 9월 13일 17시 49분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지음/128쪽 5000원 문학과 지성사

“나는 내가 쓴 시를 두 번 다시 보기 싫다. 혐오감이 난다. 누가 시를 위해 순교할 수 있을까? 나는 시를 불신했고 모독했다….”

황지우(51·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는 1983년 발표한 처녀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자서(自序)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비록 그는 부끄러워했지만 이 시집은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군사정권의 억압에 저항하는 민중의 현실을 문학 언어로 녹여낸 시집은 지금까지 6만권 넘게 팔렸고 요즘도 매달 500권 이상 꾸준히 나간다.

문단에서는 마흔여덟개의 물음표를 연속해서 찍고(‘의혹을 향하여’), 신문 네컷 만화를 인용(‘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씨의 어느 날’)하는 등 기존의 문법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황 시인의 실험을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1984년 제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여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했다.

문학과 지성사의 김수영 편집부장은 “젊은이의 저항문화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면서 황지우 특유의 문법을 창조한 시집”이라며 “억압이 존재하는 모든 공간과 시대에 이 시집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황 시인은 그 당시 영화관에서 영화 시작 전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관객 전원이 기립해야 했던 장면을 “…삼천리 화려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며 군사문화의 잔재에 일침을 가한다. 푸른 하늘을 날고 있되 그 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은유한 것.

아울러 광주 민중항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향한 추모와 그들에게 총칼을 휘두른 학살자들에 대한 비꼼을 시집속에 담았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던 자기반성도 엿보인다.

언젠가 한 선배가 이 시집을 권한 적이 있다. ‘새들조차 세상을 뜨고 싶을’ 정도로 목말랐었던 시대의 아픔을 느껴보라는 뜻이었다. 군사정권이 종언을 고한 지금도 불신과 부패가 가득하긴 마찬가지. “…파리는 파리목숨입니다. 이제 울음소리도 없습니다. 파리 여러분! 이 향기 속의 살기에 유의하시압!”(‘에프킬라를 뿌리며’)이라던 황 시인의 읊조림이 아직도공감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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