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꿈의 설계자 ´가우디´

  • 입력 2002년 9월 13일 17시 19분


스페인바르셀로나 성가족 대성당. 동아일보자료사진
스페인바르셀로나 성가족 대성당. 동아일보자료사진
◇가우디/하이스 반 헨스베르헌 지음 양성혜 옮김/436쪽 1만 5000원 현암사

은사인 김중업 선생이 “이 사람이 르 꼬르뷔제 선생이 유일하게 천재라고 하던 ‘가우디’”라며 그의 작품집을 보여 준 그날 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였다.

그 때는 ‘건축과에 잘못 온 것 아닌가, 내가 과연 건축가가 될 수 있는가 고민하다가 학교를 쉬고 김중업 선생 사무실에 들어가 건축에 눈을 막 떠가던 때여서 충격이 컸다. 밤새 그의 작품집을 보다가 새벽을 맞았다. 감히 이 위대한 건축 세계에 도전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 같았다. 문학 청년 시절 보들레르를 읽고 느낀 절망보다 더 큰 좌절을 느꼈다. 그런 아픈 감동으로 한동안 가우디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때 그린 스케치들을 보면 얼마나 그의 작품에 깊이 매료됐었는지 지금도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다가 김중업 선생 사무실을 떠나 김수근 선생 사무실로 간 후 건축보다 도시설계에 몰두하면서는 거의 그를 잊었다. 간혹 그의 작품을 잡지나 책을 통해서 보는 일이 있어도 처음 느꼈던 감동은 추억같은 것으로만 남아 있었다.

두 선생님의 사무실을 나와 독립한 후 가우디의 건축언어가 나도 모르게 제도판 위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집을 그릴 때마다 가우디가 떠올랐다. 그를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게 될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십년 후 드디어 김중업 선생이 주신 책으로 보고 감동하였던 ‘카사밀러’,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공원’을 보게 되었다.

카사밀러를 처음 본 날은 너무 얼얼하여 다음 행선지로 가지도 못했다. 다음날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갔을 때는 안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종일 바깥만 서성거렸다. 마지막날 구엘공원에 갔을 때에야 편안히 볼 수가 있었다. 그 사흘 밤 사흘 낮의 감동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후 그에 대한 책은 눈에 띄이는 데로 사보았다.

사흘전 한스 베르헨이 가우디 탄생15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가우디’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양성혜씨가 번역한 책이다. 가우디에 대한 수많은 책 가운데 가장 가우디에 가깝게 다가선 책이다. 건축가들이 쓴 책은 인간 가우디를 잘 알지 못하고 학자들이 쓴 책은 가우디의 작품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 책은 가우디와 가우디의 작품 모두를 잘 아는 사람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 최고의 가우디 평전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내가 느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쓴 책은 여태 보지 못하였는데, 이 책은 가우디에 대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한다. 기하학적 질서의 세계인 건축에 처음으로 유기적 질서의 세계를 보여 준 신비주의자이며 개혁가였던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진면목이 역력하다. 뉴욕타임즈의 서평처럼 엄청나게 감동적인 전기다.

그리고 더하여 책을 읽을수록 마치 현장에 간 듯 가우디의 사상과 건축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항상 보행자가 전차나 자동차보다 우선이라고 주장하던 가우디가 전차에 치여 병원에서 죽어가면서 “예수! 내 주여”하던 모습과, 전차에 치이기 직전 “내일은 일찍 오게나. 아주 아름다운 일을 할 계획이니까”하던 가우디의 모습이 영상처럼 오버랩되는 장면이 책에 가득하다.

3년전 가우디 건축전이 서울에서 열렸다. 그때 초대받은 나도 두 시간 넘게 기다려 전시회를 볼 수 있었을 만큼 대성황이었다. 그러나 그 전시회에서 과연 사람들이 가우디를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밤 늦게까지 ‘가우디’를 읽으면서 그때 전시회에 왔던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더 큰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내가 모르던 가우디가 많이 있다. 더러는 알지 않았으면 했던 그의 적나라한 모습도 있지만, 책을 읽고 참으로 오랜만에 그를 편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다. 가우디는 위대한 작가이기 이전에 카탈루니아의 아름다운 영혼이었다. 지난해 20세기 건축산책이라는 책에 금세기 최고의 건축가 열두 명에 대한 책을 쓰면서 가우디를 당연히 제일 먼저 다루었다.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야 위대한 유산을 남길 수 있다.

매일 미사, 아침묵상, 삼종기도, 산책, 고해성사를 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건축에 삶의 전부를 바친 ‘영감으로 충만했던 성자-가우디’. 한스 베르헨의 ‘가우디’는 현대 건축의 이름으로 인류의 문화유산을 만들며 지내온 가우디 평생의 작업과 작품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책을 다 읽은 날 밤 모처럼 풍요로운 잠을 잘 수 있었다. 번역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건축가 보다 더 가우디를 사랑하는 마음이 저자 못지 않다.

김석철 명지대 건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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