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현장에서]고기정/“지자체 집값 뛰우네요”

  • 입력 2002년 9월 11일 17시 19분


6일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아파트 내 부동산 중개업소.

“조금 더 기다려도 되겠죠? 값이 당장 빠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손님)

“웬걸요, 지금 팔 수 있으면 파세요.”(업주)

9일 같은 장소.

“1000(만원)정도 낮추면 팔릴까요?”(손님)

“1500(만원)은 내려서 내놓으셔야 해요. 매물이 느는 편이라서.”(업주)

10일 다시 그곳. 이번에는 전화통화다.

“살 사람 있는데 연결시켜 드려요?”(업주)

“무슨 소리예요, 신문도 안 봐요? 당분간 물건 돌리지 마세요.”(손님)

손바닥 뒤집히듯 사정이 확 바뀐 사연은 이렇다.

‘9·4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나온 직후에만 해도 잠실에서는 ‘과연 집값이 잡힐까’ 하는 의구심이 팽배했다. 그런데도 이번 ‘9·4 안정대책’은 전례 없는 고강도 처방이라는 점에서 약발이 먹히는 분위기였다. 불행히도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송파구청이 9일 잠실지구 4개 단지의 재건축 승인을 한꺼번에 내줄 것이라고 밝히자 상황이 역전됐다.

잠실지구는 전세난을 고려해 단지별로 재건축 시기를 분산하겠다는 게 송파구의 방침이었다.

갑자기 궤도를 수정한 이유는 일괄 사업승인을 통해 투기수요를 미리 차단하겠다는 것. 여기에 최근 2년간 송파구에 새로 들어선 다세대주택이 1만4000가구나 돼 전세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시가 즉각 ‘불끄기’에 나섰다. 종전의 방침이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러자 송파구는 ‘내부적으로만 논의한 사안’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송파구가 ‘무리수’를 둔 건 구민(區民)들의 민원 때문이다. 잠실 4개 단지 가운데 한 단지를 우선 승인 대상으로 선정해 서울시에 올려야 하기 때문에 탈락한 단지들의 반발이 거셀 게 뻔하다.

그렇다고 해서 뒷일을 생각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정책을 바꿔서는 안될 일이다. 지금처럼 집값이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잠실의 한 중개업자가 한 말이다. “종전에는 투기꾼들이 집값을 올려놓더니만 이번에는 지자체가 집값을 띄우는군요. 송파구 공무원들도 투기 혐의자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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