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박세일/4600명 對 82명

  • 입력 2002년 9월 10일 18시 27분


우리는 국회를 보면서 실망하고 좌절한다. 정치가 민생과 정책은 돌보지 않고 허구한 날 내용 없는 정쟁으로만 허송세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정말 정치가 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지 않겠는가 하고 탄식한다. 그러나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국회가 민생과 정책을 챙길 의사가 없는가, 아니면 능력이 없는가. 한마디로 능력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국회 초당적 싱크탱크 필요▼

오늘날은 국가 경영에 고도의 정책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인데 국회에는 그러한 전문적 정책능력이 없다. 국회의원들은 정치 전문가들일지는 몰라도 정책 전문가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국회 안에 거대한 싱크탱크를 만들어 그 나라 최고의 정책 전문가들로 하여금 국회의원들을 돕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국회의원은 상하원을 합쳐서 535명이다. 이들을 돕는 의회 내 싱크탱크인 입법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의회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 기술평가처(Office of the Technology Assessment)의 직원 수는 1340명선이다. 여기에 연방예산 집행에 대하여 감시감독을 하는 회계감사원(General Accounting Office) 인원까지 포함시키면 4600명선에 이른다.

이들 약 4600명의 최고급 정책인력들이 미 의회의 전문적 정책능력을 높이고 있다.

의회예산처는 전문 고급인력이 현재 232명인데 이들 중 70%가 박사급 인력이다. 이들이 일년 내내 국가예산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지켜보고 있다. 모든 법안마다 그 집행에 따르는 예산비용을 미리 계산하여 입법 여부의 판단에 참고토록 한다.

기술평가처의 200명이 넘는 전문인력은 오늘날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과학과 기술 관련 전문지식에 관한 자문에 응하고 있다.

입법조사국에도 900명이 넘는 전문인력이 1년에 평균 70만건 이상이나 되는 의원들의 입법 관련 질의에 답하고 있다. 회계감사원은 3300명 정도의 전문인력을 가지고 정부의 회계감사는 물론 거의 모든 정부정책에 대한 정책 평가, 대안제시까지 하고 있다. 이들 3300명 중 50% 이상이 석박사들이다.

이들 국회의 싱크탱크는 정치적으로 중립적, 초당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오직 전문성의 존중과 국민이익 우선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

회계감사원 원장 임기도 15년으로 하여 정치권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도화하였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국회의원 273명의 입법활동을 도와주는 법제실 직원은 고작 41명이고 예산과 결산활동을 도와주는 예산정책실 직원도 41명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약 4600명의 전문 고급인력들이 국회의원의 정책능력을 높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는 겨우 82명이 돕고 있다. 그러니 국회의 정책능력이 낮을 수밖에 없고 국회에서 진지한 정책토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문적 정책능력이 부족하니 국정감사와 공청회가 겉돌지 않을 수 없고 예·결산 심의가 대단히 부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호통이나 치고 몸싸움이나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래서는 안 된다. 최고의 국민대표기관을 이렇게 무능하게 내버려두어선 안 된다.

국회의 정책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를 국회에 만들어야 한다. 국회에 만들 싱크탱크는 경제발전뿐 아니라 외교안보, 국방통일, 정치개혁, 사회개발, 국토환경, 문화예술 등 국정 전 영역의 정책과제를 다루어야 한다. 따라서 규모는 최소한 한국개발원(KDI)의 5배, 박사급 이상의 전문정책 인력만 500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

▼전문적 정책능력 높여야▼

이런 제안에 대해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미 의회 회계감사원의 예산은 약 4억3000만달러이나 그들의 활동으로 연간 약 264억달러의 예산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1달러를 써서 약 61달러의 국민 세금의 낭비를 막는 셈이다.

만일 우리나라 국회에도 이러한 유능한 거대 싱크탱크가 있었더라면 오늘날 정부가 공적자금을 156조원이나 방만하게 쓸 수도 없었고, 회수불능의 자금이 69조원이나 되지도 아니했을 것이다. 분명 엄청난 국민의 혈세 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결단을 하여야 한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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