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박권식/수해지역 ´방´이 동난 까닭은…

  • 입력 2002년 9월 6일 18시 43분


2일 오전 4시 한전 강릉지사 배전사령실 앞 뜰에서 긴급 복구조가 점심 도시락과 물, 간단한 간식이 든 꾸러미를 들고 작업차에 올랐다. 이미 48시간 넘게 강행군한 탓으로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이끌고 올라탄 작업 트럭에는 변압기, 14m 콘크리트 전주 등이 가득 실려 있었다. 현장 복구조가 차에서 내려 다시 2시간여 동안 걸어서 겨우 접근에 성공한 어성천 계곡에는 진흙더미 위에 유실 전주가 밑바닥이 거꾸로 드러난 채 놓여 있었다. 이를 통해 그 인근 어디엔가 전기 공급선로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부연동 계곡까지는 수해 이전 약 1000여개 이상의 전주를 비롯해 그 사이사이에 변압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수마가 핥고 지나간 뒤에는 폐허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1000개의 전주를 다시 세우려는 의지는 이 폐허를 덮고도 남았지만, 중장비가 들어가지 못해 삽질 곡괭이질을 하려니 그저 까마득한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밤샘 복구작업을 계속하다가 이웃 사업소에서 온 동료가 지쳐 쓰러졌다. 근처 숙박업소를 찾았으나 이미 초저녁에 방이 동났다며 다른 곳으로 가보라고 했다. 절정의 피서기도 아닌데 물난리를 겪은 동네의 숙박업소에서 방이 동났다니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오전 2시반이 지나 구석진 곳에 위치한 여관에서 겨우 잠자리를 얻게 되자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방 잡기가 어려운 이유를 물어봤다. 그리곤 주인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대답에 벌어진 입이 얼른 다물어지지 않았다. “왜긴 뭐가 왜예요. 갑자기 서울에서 높은 양반들이 들이닥치니까 그렇지….”

박권식 강원 강릉시 포남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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