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12…삼칠일 (11)

  • 입력 2002년 8월 30일 18시 32분


“우근이는 엄마 젖이 밥이다” 희향은 젖가슴에 매달려 있는 조개 같은 손바닥을 보면서 말했다. 젖을 물릴 때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만 안심하고 숨쉴 수 있는 시간이다.

“어서어서 커서 맛있는 것 많이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소원이가 말했다.

“아직 멀었재, 이도 안 났는데, 안 그렇나 우근아. 처음에는 죽을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먹고 그 다음에는 밥을 조금씩 먹고, 이가 다 나려면 두 살이나 되야 한다”

“조행조좌조어조치불성인(早行早座早語早齒不成人)” 용하는 이 사이에 낀 소고기를 쑤시면서 말했다.

“무슨 뜻인데?” 소원이가 물었다.

“빨리 걷고 빨리 말하고 빨리 이가 나온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뜻이다”

“흐음. 나는 언제 났는데?”

“소원이는 빨랐재. 한 살도 되기 전에 다 났으니까”

“그럼 나는 안 좋겠네?”

“어데, 여자는 남자보다 빠르다”

말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복이는 젓가락을 상에 내려놓고 빠른 말투로 말했다.

“오늘 참 많이 왔재. 미촌리 사는 친정 식구들도 오고, 안법리 남동생, 가곡동 삼촌, 내일동 조카, 대구 사는 보선이도 왔고, 동네 사람들도 꽤 많이 왔으니까 서른 명은 족히 안 되겠나. 갈치가 영 모자라더라. 경칠이가 이제 막 두 살이 된 영옥이 데리고 왔다 아이가, 영옥이하고 우근이가 똑 닮았더라. 우근이는 친정 쪽 피가 진한갑다”

“아닙니다 어머니, 이 아는 자기 아버지를 닮았어요”

희향은 잠자면서 젖을 빠는 우근의 입술이 자신의 혼을 직접 건드리는 듯한 느낌에 황홀하게 눈을 감았다. 이대로 이 아이를 안고 잠들 수 있다면 기분이 좋을 텐데, 하지만 아직 밥도 먹지 않았고 할 일도 있다, 저녁 설거지에 보리도 삶아야 하고 내일 아침 준비도 얼추 해놓아야 하고, 속옷하고 양말도 기워야 하고, 또 뭐가 있었는데…, 꿈을 꾸는 듯한 머리 속으로 복이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그란가?”

“안 그렇습니까 당신, 닮았지요?” 희향은 게슴츠레 눈을 뜨고 오늘 처음으로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아직은 잘 모른다. 아이들 얼굴은 변한다 아이가”

“엄마 엄마, 근데 그 때때옷은 왜 벗겼는데? 억수로 귀엽던데” 소원의 목소리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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