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영/공직자 검증 자리잡았다

  • 입력 2002년 8월 28일 18시 18분


장대환 총리지명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안이 큰 표차로 부결되었다. 장상 총리지명자에 이어 두 번째 일이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국정운영에 대한 차질을 내세워 한나라당을 거세게 비난하고 한나라당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고 국정운영 능력면에서도 의심스러운 인사를 총리서리로 임명한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총리 임명동의가 연거푸 실패함으로써 임기 말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더욱 어려운 처지에 빠질 것이 뻔하다. 그리고 대통령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두고 그렇지 않아도 전쟁을 방불케 하는 대치정국이 더욱 치열한 대결국면으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제왕적 대통령 견제▼

총리지명자의 국회 임명동의 실패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예측하고 우려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두 번에 걸친 총리지명자의 국회 임명동의 실패를 지켜보면서 인사청문회 제도가 가진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도 평가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첫째, 공직자의 도덕성과 능력에 대해 엄격한 검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정당의 특위위원들이 총리지명자에 대한 검증을 시도하고 TV중계를 통해 이를 지켜본 국민과 시민단체들 사이에 총리 임명동의를 둘러싼 공론이 형성됨으로써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국회에서의 청문회가 의혹만 제기한 채 제대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도 하다. 또한 임명동의청문회가 도덕성에 대한 검증 위주로 진행되면서 국정운영능력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고, 청문회에서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는 자조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실시된 두 번의 청문회를 거치면서 공직자의 도덕성과 능력에 대한 기준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이제 공직에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공직사회를 정화하고 나라 전체를 깨끗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리라 생각된다.

둘째,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 운영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발견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한다. 모든 권력이 지나치게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회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인사청문회제도는 바로 이러한 국회의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이러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두고 지나치게 현실정치 논리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통령과 국회가 대립함으로써 오는 정치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의 힘과 권위를 인정하고 협력해야 한다. 국민은 대통령의 총리지명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 실패가 정파간의 대결과 대치국면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의 계기로 작동하길 바란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대하여 총리임명동의 실패가 국가의 대외신인도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임기 말에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지는 것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있다. 이른바 레임덕 현상을 반복해서 겪으면서도 이에 대한 처방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책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바로 권력행사가 제도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게 하면 된다. 총리의 결석이 발생하면 총리대행을 지명하고 국회의 총리임명동의 절차를 밟으면 된다. 위헌 논란이 일고 있는 총리서리를 계속 임명해 동의 되지 않으면 국정혼란이 발생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제왕적 대통령’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우리 헌법에 보장된 내각제적 요소를 살리고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 사이의 권력 분점 현실을 서로 인정하고 국정운영을 위해 협력하면 된다.

▼대행 체제로 국정공백 막아야▼

총리지명자의 도덕성과 능력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았다. 대통령은 이제 총리임명동의에 또 다시 실패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기대수준에 부합하고 국회의 협력을 얻을 수 있는 인사를 지명해야 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총리임명동의문제를 정치적 대결의 연장선상에서 인식해서는 안 된다. 현재 대통령은 정당의 당적을 버렸고, 무엇보다도 대통령 임기 말의 국정혼란이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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