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농구잘해 집안 일으키고 싶었죠”

  • 입력 2002년 8월 25일 17시 53분


1985년 가을 춘천 봉의초등학교 농구부 숙소. 키 1m39에 체중은 30㎏도 안되는 한 6학년 여학생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날은 바로 중학교 체육특기자를 선발하는 날. 그 학생의 귀에 “너는 키가 작으니까 운동을 그만둬”라는 말이 들렸다. 그만두라는 말을 들은 그 친구의 키도 1m39. 보나마나 자신도 떨어질게 뻔했다. ‘등록금은? 부모님 얼굴은 어떻게 보지?’

고민 끝에 자신의 차례도 아닌데 용기를 내 감독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도 관둬야돼요?” 그러자 감독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아냐,넌 작아도 깡다구가 있으니까 계속해봐.”

그로부터 17년. 그 학생의 키는 그때부터 30㎝도 채 자라지 않았지만 여자 프로농구 현대 하이페리온을 팀 창단 16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시키며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을 안았다.

김영옥(28). 국내 여자프로농구 6개팀 주전중 가장 작은 키(1m68).그러나 2m 용병센터 사이를 빠른 발로 휘젓고, 외곽슛을 펑펑 날리는 간 큰 선수다.

#잘 먹기 위해 시작한 농구#

농구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때. 반대항 농구대회에서 남자들 보다 실력과 투지가 있는 그를 보고 농구부 감독이 추천했다. 그때 다니던 학교엔 여자부가 없어 봉의초등교로 전학했다. 어머니가 ‘7남매 중에 몸이 제일 약한 애가 무슨 운동이냐’고 반대했지만 그는 반드시 해야겠다고 우겨 전학과 동시에 농구를 시작했다.

“전역 직업군인이시던 아버지는 별다른 수입이 없었고 어머니가 행상으로 멸치를 팔아 7남매를 먹여살리셨어요. 그때 생각이 들었죠. 운동이라도 잘해야 부모님 관심을 끌 수 있다. 그리고 하루 하루 먹기도 힘든데 농구부에 가면 간식 까지 챙겨주고….”

중학시절은 이모집에서, 여고시절엔 출가한 셋째 언니집에서 생활을 해야했다. 그래도 농구코트에서 만큼은 명랑하게 뛰어다니며 남들보다 몇 배 땀을 흘렸다. 키는 작지만 초등교시절 100m를 13초에 주파한 빠른 발이 있어 나름대로 큰 상대들과 맞서는 요령을 깨우쳐갔다.

#이젠 내가 가장이다#

중3때 아버지가 뇌일혈로 쓰러져 사흘만에 유명을 달리한 뒤 “운동을 잘해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열심히 운동한 덕택에 춘천여고 2학년이던 91년 추계대회에서 우승했다. 팀창단 44년만에 첫 전국대회 우승. 이를 계기로 임영보 당시 태평양감독의 눈에 들어 실업입단 계약을 맺게됐다. “감독님이 너무너무 많이 챙겨주셨어요. 몸이 너무 약하다고 고2때부터 흑염소를 계속 대주셨죠. 그랬더니 그전에 얼마나 못먹었는지 몸무게가 10㎏이나 늘더라구요.”

#위기를 딛고…#

태평양과 신세계를 거쳐 현대에 둥지를 튼 김영옥은 주로 짧은 시간동안 반전을 노리는 식스맨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실업7년차이던 99년 가을. 모교인 춘천여고에서 후배들과 연습게임을 하던 중 뭐가 못마땅했는지 감독이 모진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후배들 앞에서 너무 심하게 하셨어요. 옷을 벗어보니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 정도로…. 창피하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야하는 가 생각이 들어 집으로 도망쳤죠”

농구를 그만둘 생각에 짐을 싸 집으로 들어갔더니 생선가게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의 첫마디는 “아이구, 이제 우리집 망했다”였다. 딸이 맞고 들어왔는데 그런 말을 하나 원망도 했지만 김영옥은 1주일동안 곰곰이 생각하다 다시 팀에 합류했다. ‘나혼자 고생하면 우리집이 잘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슴에 담고서….

아무튼 그때부터 더 이를 악물고 운동한 덕택에 기량은 날로 쑥쑥 늘어갔고 이듬해에는 주전은 물론 국가대표까지 꿰차게 됐다.

#이젠 즐기는 농구할 터#

2년전 엄마에게 고교졸업후 8년동안 모은 돈을 고스란히 털어 춘천에 아파트를 장만해 드렸다. 효녀소리 듣고싶어서가 아니라 ‘농구로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에 대한 실천이었던 것.

김영옥은 내년봄 지난해 11월부터 사귄 남자친구 정경모씨(32)와 웨딩마치를 올린다.

전 창기자 jeon@donga.com

가난과 작은 키를 딛고 농구스타로 우뚝선 김영옥
▼김영옥은?▼

△생년월일〓1974년 3월4일

△체격〓1m68, 53㎏

△포지션〓가드 겸 포워드

△소속팀〓현대

△출신교〓춘천 봉의초-봉의여중-춘천여고

△가족관계〓모 조윤실씨(60)의

1남6녀중 5녀

△별명〓빙어, 총알

△취미〓십자수

△e메일〓kinyono4@hanmail.net

△인터넷홈페이지〓http://cafe.

daum.net/yylovers/

△애창곡〓화장을 고치고(왁스)

△플레이가 마음에 드는 선수〓조성원(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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