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거악 척결’은 내부악 척결부터

  • 입력 2002년 8월 20일 18시 28분


검사들 중에는 정치인들을 깊이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검사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거대한 사회악의 뿌리가 정치권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비리나 금융비리는 물론 심지어 조폭까지 그 뿌리가 정치권에 뻗쳐 있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김진환(金振煥) 서울지검장이 취임식에서 ‘편하게 잠들지 못하도록 해야 할 거악(巨惡)’이라고 지목한 대상에는 정치권력도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정치인들도 검찰을 가볍게 여긴다. 일부에 국한된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인사철만 되면 앞다퉈 정치권에 줄을 대는 검찰간부들의 모습을 정치인들은 경멸하면서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정치권과 검찰이 서로 미워하면서 공생을 해 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검찰이 스스로 외압과 외풍을 불러들인 셈이다.

정치권과 검찰의 ‘검은 거래’는 인사청탁과 인사파행으로부터 시작된다. 검찰 내에서 특정지역 패권주의가 끊임없이 논란이 돼 온 것도 이에 연유한다. 최근 단행된 검찰의 고위간부 인사도 문제가 있다. ‘이용호 게이트’ 부실수사로 문책된 사람들을 재중용한 것은 검찰 개혁과 거리가 멀다.

거악이 편하게 잠들지 못하도록 하려면 먼저 검사들 각자가 정치권에 기대어 ‘편하게’ 승진하거나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은 앞으로도 계속 작은 악에는 서릿발 같으면서 큰 악에는 몸을 사린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더욱 깊은 오욕의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또한 검사들 각자가 손을 깨끗이 씻고 단죄의 칼을 들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검사들이 ‘공익의 대표자’에 걸맞은 도덕성을 갖추지 못할 경우 ‘거악에 대한 불꽃같은 투혼’은 또다시 수사(修辭)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거악 척결을 위해서는 검찰의 내부악 척결이 선행돼야 한다. 검찰이 바로 서면 거악은 저절로 움츠러든다. 정권 변동기인 지금은 검찰이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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