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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19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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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대한변호사협회는 창립총회를 마치고 규약 인가 신청 중에 있었으나 6·25전쟁의 발발로 협회장 김용무, 부회장 이상기가 모두 피랍되어 공석으로 있은 채로 그동안 대한변협의 조직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1952년 8월 29일 법률 제207호로 ‘대한변호사협회규약’이 인가됨으로써 오랜 진통 끝에 대한변호사협회가 창설되었다.”
대한변호사사(大韓辯護士史)의 공식 기록이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창설된 대한변협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변협은 국치일인 29일을 피해 19일 기념식을 가졌고 세미나도 개최한다. 당연히 축하하고 기념할 일이다.
▼´證´하나로 평생 우려먹어서야▼
그 반세기 동안 변협에는 영욕이 교차했다. 한때 유신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기도 했지만 그 유신의 계엄령을 반대하는 결의를 했다가 수장이었던 이병린 변호사가 투옥되기도 했다. 이 변호사가 사망하자 당시 변협회장 김은호 변호사는 그를 기리면서 “불고가사(不顧家事)하신 정의의 길은 저 미국의 독립 무렵 미국 시민 속에 ‘정의에 사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의 거소는 형무소’라는 말이 있었음을 상기할 때 선생의 생애는 불의와의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언제나 선생의 오매불망이던 민주질서의 유지,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있어서는 1만 법조인이 모두 의인이 되어 짊어진 사명을 완수할 작정입니다” 라고 다짐했다. 실제로 변협은 5공 정권의 폭압 하에서 침해당한 인권 피해자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여 국민의 신뢰를 쌓았다.
그러나 동시에 일부 변호사들은 높은 수임료, 불성실한 변론 등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전관예우와 브로커가 날뛰는 곳에서 변호사들이 사법정의의 수호자일 수는 없었다. 변호사가 되기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변호사 수의 증가를 둘러싸고 시민단체들과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법조 이기주의’라는 말이 유행했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 한다는 비판이었다. 실제로 변협회장 선거 때만 되면 변호사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경감시키겠다는 것이 거의 공통된 공약이었음을 상기하면 씁쓸하기만 하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변호사와 변호사회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위해서는 변호사와 변호사회 자체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과거처럼 자격증 하나 들고 평생 우려먹어서는 안 된다. 법정 변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정부기관, 기업, 심지어는 시민사회단체에도 진출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1만5000명의 회원을 갖는 전국변호사조합(National Lawyers’ Guild)이 있다. 이들은 각종 시민 사회 단체에 상근하면서 공공의 이익과 시민의 인권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여전히 법은 정의와 진리의 편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정치적 중립을 잃고 정권의 시녀가 되기 일쑤이고, 사법부의 판결도 왕왕 공정성을 잃어 국민의 원성을 사는 때가 적지 않다. 심지어 법을 그대로 따르면 손해본다고 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나 80%가 넘어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법치주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변협이 이러한 상황을 자신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분발하지 않으면 지난 50년간 스스로 어렵게 형성하고 획득한 신뢰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래의 50주년´준비할 때▼
더구나 과거처럼 성명서 몇 장 내고 인권침해 사건 변론하는 것으로 그 사명을 다할 수는 없다. 인권의 개념은 다양화됐고 변호사의 수요는 증대되었다. 정치적 인권을 넘어 사회 경제적 권리를 지키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최근 문제되고 있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변협이 반대해 영세상인들과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변호사법 제1조가 명시하듯 변호사의 인권옹호 업무는 불변의 것이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라는 것이 과거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방식의 단순행위로는 더 이상 지켜질 수 없다. 보다 더 국민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가 그 애환을 해결하며 보다 더 공정한 입법과 법의 엄정한 적용이 이루어지도록 감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변협이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의무화한 것은 세계에 별로 유례가 없는 것으로서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시간만 때우려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계기로 진정으로 변호사와 변호사회가 우리 사회에 기여할 바를 연구조사하고 실천해야 한다. 지난 50년 동안의 변협의 전통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지금부터 미래의 50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
박원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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