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장이 왜 '떡값' 줬나

  • 입력 2002년 7월 10일 18시 45분


대검 중수부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둘째 아들 홍업(弘業)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밝힌 혐의사실을 보는 심정은 한마디로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참담함 그 자체다. 홍업씨는 98년 현정권 출범 직후부터 2년여 동안 현대와 삼성그룹 등으로부터 22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받은 돈의 명목은 정치자금이라고 한다. 정치인도 아닌 홍업씨가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이끌던 아태재단이 애초부터 정치자금 모금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홍업씨가 대기업들에서 돈을 받기 시작한 98년은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기업이 줄줄이 도산하고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나던 때였다. 수많은 국민은 끼고 있던 반지를 빼고 장롱 속에 넣어두었던 금가락지를 꺼내 나라빚을 갚는 데 쓰라고 내놓았다. 바로 그러던 때에 대통령 아들은 재벌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돈 중 상당액을 자기 집 베란다 창고에 숨기고 앞에 가구를 쌓아두었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한 짓이다. 대통령 아들의 격(格)이 이런 수준이라니 나라가 부끄러울 일이다.

홍업씨는 임동원(林東源) 전 국정원장과 신건(辛建) 현 국정원장에게서도 각각 2500여만원과 1000여만원을 받았다. 명목은 ‘떡값’이다. 전현(前現) 국정원장은 모두 국정원 공금이 아닌 개인 돈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공금이 아니라는 그들의 주장을 믿기는 어렵다. 설령 개인 돈이라는 말을 믿는다고 해도 국가정보기관의 장(長)이 왜 대통령 아들에게 틈틈이 ‘떡값’을 줘야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임씨와 신씨는 이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해명해야 한다. 만약 이들의 해명이 석연치 않으면 검찰이 수사에 나서 돈의 출처에서부터 돈을 준 이유까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국가기관을 사물화(私物化)한 권력자나 그 측근이 국정을 농단하는 폐악은 근절되기 어렵다. 결코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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