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월드컵]<2>국가이미지 업그레이드

  • 입력 2002년 6월 28일 19시 03분


비즈니스위크 '멋진 한국'
비즈니스위크 '멋진 한국'
《한국 축구가 사상 초유의 ‘4강 신화’를 달성한 2002 한일월드컵. 그러나 경기 실적 못지 않게 이번 월드컵은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줬다. 연인원 2000여만명이 참여할 정도로 국민적 에너지가 분출된 길거리 응원, 엄숙의 대상이었던 태극기의 패션화, 국호를 응용한 응원구호 ‘대∼한민국’의 유행, 성숙한 시민의식의 확인, 광장에서의 축제….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 모두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게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이런 변화들을 어떻게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승화시키느냐가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이번 월드컵이 초래한 변화들을 5회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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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두바이(아랍에미리트)지사 이종렬 과장은 최근 ‘월드컵 효과’를 실감했다.

LG전자 두바이지사는 인근국 레바논의 유적지 ‘로만 배스(Roman Bath)’에서 제품전시회와 행사를 가지려고 여러 번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국가 차원의 행사만 열리는 신성한 곳이라는 것.

러던 레바논 당국이 갑자기 6월 말 예정인 LG 음악페스티벌과 제품전시회를 로만 배스에서 열어도 좋다고 허가해줬다. 외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허가를 받은 것.

깜짝 놀란 이 과장에게 레바논 공무원은 “한국이 월드컵에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워줬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KOTRA 상파울루 이기 무역관장은 요즘 유명인이 된 느낌이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생면부지의 브라질 사람들이 말을 걸어와 “꼬레아에서 왔느냐”며 묻곤 축구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140만명의 일본계 이민자가 살고 있는 브라질에서는 동양인 하면 일본인이라는 인식이 확고했지만 한일 월드컵이 이런 등식을 깬 것.

▽세계인이 주목하는 ‘KOREA’〓한국인의 기대와 달리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분단국가’ ‘정치 경제가 불안정한 나라’ 등 부정적인 것이 많았다. 88서울올림픽이 한국을 널리 알렸지만 이미지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KOTRA가 5월 72개국 1만2793명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이미지 조사에서도 ‘분단국가’가 33%로 가장 많았고 월드컵(29%), 고도성장(25%), 88올림픽(13%) 순이었다. 한국을 잘 알거나 안다고 응답한 사람은 28%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일 월드컵은 이런 이미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주재원과 교포들은 “이번 월드컵처럼 한국에 관한 긍정적인 뉴스가 집중적으로 부각된 것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1950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동번역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고덴샤를 운영하고 있는 고기수 사장은 “한국이 세계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은 것은 한국전쟁, 박정희 대통령 서거, 외환위기 등 모두 부정적 사건이었다”며 “이번 월드컵처럼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뉴스가 넘친 것은 생전 처음 본다”고 일본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변화는 세계인을 한꺼번에 몰입시키는 월드컵이라는 이벤트의 성격, 한국 축구팀의 4강 신화, ‘붉은 악마’로 상징되는 전 국민의 열정적이고 질서 있는 응원 등 삼박자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외국의 유수 언론들은 한국팀의 승전보뿐만 아니라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인 ‘길거리 응원’과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을 연일 부각시켰다. 미국과 유럽 언론들은 ‘붉은 악마의 춤이 한국을 바꾸고 있다’ ‘동방의 태양이 한국에서 불을 뿜고 있다’는 등의 제목으로 현지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또 한국팀의 투혼과 한반도를 뒤덮은 붉은 응원단의 열정과 자제력이 60억 세계인에게 TV스크린을 통해 가감 없이 전해지면서 ‘열정의 나라, 코리아’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나타나는 청신호〓한일 월드컵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분야는 IT산업. 6월 중 삼성전자의 영국 내 프로젝션TV 판매는 작년 6월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다. 한국의 전자제품에 대한 관심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KT는 최근 인도네시아와 1억달러의 ‘e정부 프로젝트’를 체결했다. 아시아 통신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한일 월드컵 공식후원사가 된 KT는 이번 월드컵 마케팅의 효과를 5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삼성SDS는 중국 휴양시설 전문기업과 2억달러 규모의 관광정보화 프로젝트를 체결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IT강국, 한국’이 집중 부각돼 IT 관련 제품 판매가 급증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일 월드컵은 한국제품 딜러들에게도 자부심을 심어줬다. LG전자 아랍에미리트 현지딜러인 무라드 압둘라 무라드는 한국본사에 “한국의 위상이 놀라울 정도로 올라갔다”며 “LG제품을 취급하는 내 자신도 자부심을 느낀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

드컵 공식후원사인 현대자동차의 딜러들도 마찬가지. 현대차 유럽본부 김용환 이사는 “딜러들로부터 월드컵 후원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며 “광고효과로 따지면 수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급함은 금물〓외국 주재원들과 마케팅 전문가들은 포스트 월드컵 전략에 대해서는 스스로 가다듬는 시간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KOTRA 시카고 무역관 연형철 무역관장은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지 새로운 이미지가 정착된 것은 아니다”면서 “막대한 돈을 들여 광고를 하기에 앞서 정부와 기업은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구사할 것인지 차분히 전략을 짜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김익태 소장도 “무조건 포스트 월드컵 마케팅에 나서기보다는 각 기업의 사정과 나라별 상황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대기업은 제품 고급화에 나서고 브랜드가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은 월드컵과 연결시켜 브랜드 알리기에 나서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LG경제연구원 오정훈 책임연구원은 “60억 세계인이 왜 한국을 주목했는지, 우리의 장점은 무엇인지, 세계인에게 알려야 할 우리의 모습은 무엇인지 차분하게 생각한 뒤 국가마케팅 전략을 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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