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명환/응원열기 속에서도 ´나´를 찾았으면

  • 입력 2002년 6월 23일 19시 03분


월드컵축구로 온 나라가 난리다. 축구경기도 관심거리지만 사실 온 나라에 퍼져 있는 축구 분위기가 흥미를 끈다. 온 나라의 힘이 하나로 모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축구장에는 호남 영남 서울이 없다. 그저 대한민국이다. 이런 국민단합 현상은 한 나라를 진정한 공동체국가로 만들어 내는 힘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사실 힘이 하나로 모이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하나로 뭉친 힘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하나로 뭉친 힘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어떤 견제세력도 없이 달려나가는, 누구도 못 말리는 힘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하나로 뭉친 힘이 창조적인 힘으로 작용한 사례와 함께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한 사례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힘을 뭉치자는 말을 많이 하지만 여기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힘을 뭉치는 데도 그 방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굳이 힘을 뭉치려고 한다면 그 힘의 방향을 통제할 수 있게 뭉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뭉치는 주체들이 자신의 의지와 개성을 의식하고 있는 가운데서 뭉쳐야 할 것이다. 힘이 뭉쳐지는 과정에서 개체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힘만이 아니라 힘의 위험성도 함께 키우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힘이 하나로 합쳐진 공동체의 모습은 자칫하면 왜곡되기 쉽다. 전체주의는 바로 개인의 의지와 개성이 거대한 공동체의 힘에 녹아 들어가 버린 공동체주의의 모습인 것이다. 여기서는 비판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이미 비판 자체가 나올 수 없게끔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신이 하나로 일체화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힘이 지도력과 결합되면 이 거대한 힘은 어떤 방향이든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무섭게 움직여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공동체의 힘을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긴다면 우리는 그 힘이 건강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경로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개인이 살아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개인들이 자신들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를 위해 결합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만이 공동체의 건설적인 방향을 담보하는 길이다.

개인의 의지가 거대한 공동체의 힘 속으로 녹아 들어가 있는 공동체의 힘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 결합한 조직도 능가할 수 없는 위력을 갖는다. 지도력이 건설적인 방향을 택하기만 한다면 이 힘은 그 방향을 향해 놀라운 추진력을 발휘하면서 역사발전의 주역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잘못된 지도력을 만난다면 그 결과는 무서운 파괴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열 배로 따거나 다 뺏기는 게임은 거지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도박사들이나 할 일이지 역사의 주인공들이 벌여서는 안될 게임이다.

축구경기장에서, 거리 응원에서 사람들과 함께 흥분하고 신이 나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용히 ‘우리’가 아닌 ‘나’의 모습, ‘지도자’가 아닌 ‘개인’의 모습도 찾아볼 일이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의 도박에 빠지지 않으면서 공동체의 힘을 건설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다.

김명환 신라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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