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일본]“조국이 자랑스러워요”

  • 입력 2002년 6월 17일 18시 12분


이민 안받아들기로 유명한 일본에 ‘브라질인’은 22만명이 넘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징병 징용 등으로 끌려오거나 일거리를 찾아 왔다가 정착하게 된 재일한국인이나 재일조선인을 빼고는 외국인 수로 부동의 1위다.

그런데 이들은 보통 브라질인이 아니라 일본인의 피가 흐르는 ‘일본계 브라질인’이다. 일본은 90년 입국관리법을 개정해 ‘일본인의 피를 이어받은 외국인’은 쉽게 일본에 들어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3D업종의 일손 부족에 시다리던 일본 국내사정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본계 브라질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대거 일본으로 건너오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만에 20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이들 ‘일본계 브라질인’이 요즘 월드컵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브라질과 일본이 모두 선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즈오카(靜岡)현 하마마쓰(浜松)시에 살고 있는 일본계 브라질인 미이케 미호(39)의 둘째딸 유미(9)는 요즘 “나는 브라질 사람”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마마쓰시에는 일본계 브라질인이 1만명 이상이나 살고 있다. 유미는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포르투갈 말도 못한다. 친구도 일본인이 더 많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는 “나는 일본인”이라고 말해 왔다.

어머니 미이케씨는 “월드컵 중계를 통해 브라질 선수들의 멋진 활약을 보거나 친구들과 축구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저절로 브라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어른들도 법석이다. 일본계 브라질인을 많이 고용하고 있는 공장에서는 근무중에도 TV를 볼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일본계 브라질인들끼리 모여 열광적으로 응원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인과도 함께 응원한다. 야구 밖에 보지 않았던 일본인들이 “역시 브라질은 세다”고 칭찬하면 브라질인들은 “일본도 잘한다”며 맞장구를 친다.

일본의 브라질 이민역사는 6년후면 100년이 된다. 그동안 브라질에 건너간 일본인이 26만여명이나 되고 현재는 그와 비슷한 수의 후손들이 일본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계 브라질인들의 생활은 결코 순탄치가 않다. 대부분 단순업종에서 일하고 있고 임금도 많지 않다. 회사와 직접 고용관계를 맺지 못하고 용역회사에 속해 있어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여기에다 언어장벽과 소외감, 자녀교육 문제 때문에 남모르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런 일본계 브라질인들에게 개최국에서 보는 ‘축구왕국 브라질’의 화려한 플레이는 자신들의 정체감(아이덴디티)을 확인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기회가 되고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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