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일본]“트루시에는 일본의 드골”

  • 입력 2002년 6월 16일 23시 44분


‘트루시에는 드골.’

98년 9월 이래 3년 10개월째 일본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을 맡고 있는 프랑스 국적의 필리프 트루시에가 일본의 16강 진출 확정 후 전례 없는 환대를 받고 있다.

일본인들은 2차 세계대전 영웅이자 전후 프랑스를 폐허에서 재건해 낸 샤를 드골 대통령에 비유할 정도다.

일본축구협회는 16강의 염원을 풀어준 트루시에 감독에게 5000만엔(약 5억원)의 특별 보너스를 지급한다. 광고회사는 그를 TV광고 모델로 등장시키기 위해 안달하고 있다. 편당 출연료는 4000만∼5000만엔(약 4억∼5억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 대회가 끝나면 각종 이벤트와 강연회, 축구교실 등에 참석할 것으로 보여 이 경우 수입을 전부 합하면 2억엔(약 20억원)은 되리라 한다. 공원과 거리에 벌써 트루시에의 이름이 붙여졌고 심지어 ‘트루시에 신사(神社)’도 등장했다.

일본 정부는 그에게 ‘국민영예상’도 줄 계획이다. 내각부는 총리의 지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이미 준비에 착수했다.

수여 대상은 ‘널리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사회에 밝은 희망을 주는 데 현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라고만 규정하고 있고 국적조항은 없다. 이 상은 77년 홈런 세계기록을 세운 왕정치(王貞治) 선수, 국민가수인 미소라 히바리,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영화감독,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다카하시 나오코(高橋尙子) 선수가 받는 등 15명만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팀이 4일 벨기에와 첫 경기를 치른 후 트루시에 감독에 대한 지지율은 72%였는데 16강 진출 확정 후 90%로 치솟았다.

잔칫집 분위기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그의 언동을 두고 사사건건 비난이 쏟아졌던 것에 견주어보면 지금의 ‘인기 상한가’는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하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한 일본인 대학교수는 “그의 진지함은 프랑스인의 전형이다. 그는 언제나 시험지를 받은 학생 같은 표정으로 진검 승부를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제까지 일본의 언론매체나 일본축구협회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그를 오해해 왔다는 것이다. 앵글로색슨계와 달리 프랑스인 엘리트는 농담을 잘 하거나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타입이 아니라 할 말만 딱 잘라서 하다보니 자칫 주위의 오해를 사기 쉽다는 것. 하지만 옆에서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고 오로지 해야 할 일, 승리를 이끌어내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다.

‘프랑스 엘리트의 정신자세’가 트루시에 감독으로 하여금 일본의 16강 진출 위업을 달성하도록 해주었다는 해석이 지금 일본에서 새로운 화제가 되고있다.

고베〓조헌주기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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