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닫힌 삶의 초월을 꿈꾸며 '초월의 상상'

  • 입력 2002년 5월 31일 17시 43분


중국 명나라때 화가 대진(戴進)이 그린'동천문도(洞天問道)'
중국 명나라때 화가 대진(戴進)이 그린
'동천문도(洞天問道)'
초월의 상상-도교미학 깊이 읽기/정민 지음/364쪽 1만8000원 휴머니스트

상상력, 초월성 그리고 인간의 조건

상상력과 초월성은 ‘결정론과 필연성의 세계’에 대한 반란이다. 디지털의 필연적 기능 구조와 유전자 결정론 시대에 우리는 초월을 향한 도교의 상상을 논한다. 그것은 다차원적 행동의 주체로서 인간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다. 필연성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새로운 가능성은 찾아 가야 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유로운 행동의 주체로서 자신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넓고 다양한 차원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초월적 행동의 주체로서 말이다.

상상력과 초월성, 그것은 인간이 생물학적 외연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자,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조건이다.

상상력과 초월성의 뿌리에 인간이 인간이고자 하는 동어 반복적 회귀성이 있는 것이다. 정민 교수의 신작 ‘초월의 상상’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점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는 말한다. “세상은 늘 똑같이 되풀이된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꿈도 마찬가지다. 옛날을 들춰 미래를 알 수 있다.”

정민이 말하는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반복과 회귀의 힘이다. 반복과 회귀가 역설적으로 초월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인생 무상이라는 변화 속에서도, 불변을 향해 영원히 반복하며 다시금 생동하고자 하는 의지, 그것이 초월을 지향하는 상상력의 의지다.

그러므로 정민이 보여주는 인간의 상상력은 ‘그 흔한’ 날개를 달고 있지 않다. 현란하게 돌아가는 금빛 살의 향연을 제공하는 수레바퀴를 달고 있다. 우리 눈 앞에서 비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전체를 끌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정민이 한시(漢詩) 연구로 발굴해 내는 상상력은 서구의 근대성이 추구했던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지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힘’이다.

정민이 말해왔 듯 한시는 한자로 된 시이기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상상의 세계를 향한 무수한 통로가 있다. 그 통로를 뚫어 주고 그 안으로 독자를 끌어 들이는 것이 ‘초월의 상상’이 내 건 과제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 문화 유산을 매체로 삼아 이루어 내는 독창적 작업이다.

이 점에서 도교적 상상의 세계를 서구의 신화, 판타지 등과 단순 비교한 것은 오히려 그 독창성을 삭감할 수 있다. 한 예로 정민은 ‘유선시(遊仙詩)’가 보여주는 선계를 향한 비상은 이카로스의 날개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날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서구적 상상의 세계에는 인공물의 요소가 매우 구체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더구나 이는 오늘날 서구의 판타지와 SF에 접근하는 열쇠다. 인조의 세계가 상상력 유발의 요건이 된다는 서구적 상상과 무위자연의 도가와 근원적으로 연관이 있는 도교적 상상 사이의 차이는 흥미로운 논제가 될 것이다.

이 밖에도 현실적 억압에 대한 반작용과 탈출로서 초월과 상상을 보는 관점은 오히려 지나치게 서구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이다. 이에는 ‘억압 없는 상상은 없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부정적 탈출구로서 상상의 세계에 치중함으로써, 긍정적 창조로서 상상의 세계라는 초월성이 가려지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갈 수 있다.

상상력과 초월성에 대한 논의는 간단하지 않다. 어려운 과제다. 개념 정리와 학제적 협동을 필요로 한다. 이에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종교적, 인간학적 관심들이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만큼 우리의 일상적 삶과 밀접하다.

혹자는 상상력에 대해 논할 것이 아니라, 상상하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상상력에 대해 논하는 것이 상상력을 키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그저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키워가며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21세기,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도 이 점을 상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에 ‘초월의 상상’이 폭넓은 독자들에게 ‘상상력 키우기’의 흥미로운 통로를 제공하기 바란다.

김용석 철학자·경북 영산대 교양학부 교수

anemos@mail.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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