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열린마음 열린세상]우리 아이가 혹시 ´짱´?

  • 입력 2002년 5월 15일 18시 59분


방군,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자네가 너무 아까워서 그래. 자신밖에 모르는 이 병적인 이기적 사회에서, 호연지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약하고 약아빠진 젊은이 사회에서 친구를 위해 분연히 일어선 그 용기 앞에 우린 그저 부끄러웠을 뿐이었다네. 방군의 끓어오르는 의협심, 정의감, 이건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이었어. 친구가 부당하게 맞는 걸 보고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무력감, 비굴감이 끝내 의협심에 불을 질렀으니!

▼집단폭력…따돌림…자살…▼

방군을 그냥 둘 순 없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우리는 벌써 여러 차례 모였다네. “또 모여?” 하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날로 잔인해지는 학교 폭력을 그냥 둘 순 없다는 절박한 심경에 국민협의회도 구성되었다네. 한데 자네의 그 불 같은 정의감이 우리를 또 딜레마 속으로 밀어 넣고 말았네. 자네의 용기를 찬양하다간 자칫 폭력을 합리화하는 모순에 빠지니까 말일세.

당한 학생도 설마하니 그렇게 끔찍한 보복까지야 생각을 못했겠지. 한때의 우쭐거림이 이런 비극까지 부를 줄이야 몰랐겠지.

방군,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경고라도 줄 수 있었을 텐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익명으로라도 말일세. 우리가 아쉬운 건 그래서야. 그리고 당한 학생 가족의 슬픔을 지켜보면서 우리 모두는 무척 가슴 아팠다네.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이런 사건이 다시는 안 일어나야겠어. 이걸 계기로 학교 폭력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면 비명에 간 친구의 넋을 달랠 수도 있으리라, 부모의 아픔까지도. 그리고 자네의 아픈 심경도.

지난 토요일, 정말 억울하게 당한 학교 폭력 피해자 모임. 그들의 피맺힌 절규가 지금도 귓전을 울리고 있다.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진지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우린 일단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국민에게 사과하고 특단의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설마, 우리 아이는” 하고 뒷전에 물러나 있는 모든 학부모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고자 한다. 우리 아이도 맞고 있다. 그저 자존심 상해 말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왜 요즈음 아이들이 그렇게 정서가 불안하고 충동적이고 폭발적인지, 쉽게 좌절하고 자포자기하는지, 그 까닭을 아느냐고 물어 보련다.

“야, 너 점심시간에 좀 보자.” 짱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아이가 공부가 될까. 불안해서 교실에 있을 수도 없다. 이유 없이 조퇴, 귀가를 하여 홧김에 엄마를 폭행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 성적이 떨어지고 힘이 없을 때 무슨 사연인지 대화라도 시도해 본 적이 있는가.

짱에게 묻는다. 중고교 시절의 동창은 평생의 자산이다. 자라서 식당을 열어도, 시의원 출마를 해도 내일처럼 달려와 도와줄 사람도 중고교 동창들이다. 이 귀중한 자산을 친구는커녕 “두고 보자”고 평생 이를 가는 원수로 만들다니! 세상에 이런 바보가 또 있을까.

그리고 짱의 부모에게. 조금만 자세히 관찰하면 알 수 있다. 집에서 준 용돈에 비해 쓰임새가 좋거나 못 보던 옷이나 시계, 혹은 아이 친구들의 언동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 집 아이가 그 몹쓸 짱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맞는 아이도, 때리는 아이도 아니라면 폭력 교실에서 눈치만 보며 비굴을 삭여야 하는 딱한 아이다. 어느 아이든 상처투성이다.

이젠 학교 당국도 없다고 덮을 게 아니다. 교사, 학부모, 학생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길 촉구한다. 매월 학교 폭력을 걱정하는 날을 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들 스스로 폭력 신고를 받고 집단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고되고 있다. 혹은 학부모와 긴밀히 연대해 교내에서 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하고 배우는 것도 아주 유효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폭력 추방의 날 만들자▼

그리고 학교에서는 친구 사귀기를 중심으로 인성 교육을 체계적으로 꾸준히 실시해야 한다. 대입이 중요할수록 인간 교육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외톨이는 당장 학교 갈 재미도 없거니와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지 말자. 피 묻은 손과 옷 그대로, 정든 학교를 뒤로 하고 벌을 받겠다고 스스로 경찰서로 가는 열네 살의 소년, 작은 가슴이 메었겠지. 처절한 뒷모습이 아직도 우리 눈앞에 아프게 아른거린다. 이 땅에 다시 이런 불행이 되풀이될 순 없다.

이시형 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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