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17)…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17)

  • 입력 2002년 5월 10일 18시 14분


무당3 우리 증손자를 화장터에 데리고 왔었지 조그만 손에 꼭 쥔 국화꽃을 관에 넣어 줬어 (왼쪽 귀를 손바닥으로 덮고) 이 쪽 귀 위에다

유미리 …그랬는지도 모르겠군요.

무당3 미리야 미리야 우리 손주야! 오늘 밤 불러주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제단 앞에서 밀양 아리랑을 부르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왜왔던가 왜 왔던가 왜 왔던가 가마 타고 시집은 왜 왔던가①

박수와 재비가 북 장구 징 꽹과리로 빠른 리듬을 연주하고, 세 무당은 껑충껑충 뛰면서 “어허, 훠이!” “얼쑤!” “좋다” “잘한다!” 하고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굿판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무당1 훠이! 훠이! 이리오너라, 이리오너라! 할매가 돈이 없다는구나.

유미리는 지갑에서 1만원짜리 지폐를 몇 장 꺼내 제단에 올려놓는다. 무당이 채근하여 굿상에 받쳐진 돼지 머리의 입에 지폐를 물리고, 코와 귀구멍에도 지폐를 꽂는다.

무당2 (어린애같은 표정과 더듬거리는 말투로) 할매, 오늘은 마음껏 써요. 이번에는 나가 노래할 차례니까, 당신들도 춤 춰.

유미리는 일어나 무당들을 흉내내어, 두 손을 어깨 높이로 올리고 발을 미끄러뜨리며 춤추는 조선춤을 추기 시작한다.

무당3 신철아!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춤도 같이 추지 않겠다는 거가? 춤 춰라 조상의 혼을 즐겁게 하면 너도 좋아질 거고 너거 엄마도 좋아진다 춤춰!

박수·무당2 (둘이 목소리를 맞추어)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부려서 무엇하나 인생 일장춘몽인데 아니나 놀지는 못하리라 니나노 닐리리야 닐니리야 니나노 얼싸 좋다 얼씨구나 좋아 벌 나비는 이리저리 훨훨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②

*①밀양 아리랑

②태평가 - 경기 민요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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