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효림/서울대 총장의 도덕 불감증

  • 입력 2002년 5월 3일 18시 21분


대기업 사외이사 겸임 등으로 물의를 빚었던 서울대 이기준(李基俊) 총장이 임기 4년을 7개월 남겨두고 사퇴했다. 이로써 1991년 이후 교수들이 직접 뽑은 서울대 총장 4명이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김종운(金鐘云) 총장은 정년퇴임으로, 이수성(李壽成) 총장은 국무총리에 임명돼 학교를 떠났다. 이기준 총장의 전임인 선우중호(鮮于仲皓) 총장은 딸의 과외 문제로 사퇴했다.

이 총장의 사퇴에 대해 교수와 학생들은 몹시 침통해하는 분위기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 떠나긴 했지만 최고의 지성이랄 수 있는 서울대 총장이 명예롭지 못하게 퇴진한 것에 대한 일종의 자괴감때문인 것 같다.

한 교수는 “이 총장이 전임자들의 선례를 거울삼아 처신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 총장은 98년 취임 당시에도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으로 도덕성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 미국 유학중이던 이 총장의 아들은 결국 귀국해 병역 의무를 마쳤다.

그러나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 농성 과정에서 이 총장이 아들의 병역기간 단축을 병무청에 문의한 문서가 발견돼 또 한번 구설수에 올랐다.

취임 초부터 문제가 있었던 만큼 이 총장은 이후 보다 신중하게 처신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질 못했다.

그 결과로 이 총장은 개인적으로는 중도 사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고 자신이 아끼던 학교의 위신에도 손상을 입혔다. 학내 갈등을 증폭시키고 학교 운영에도 차질을 초래했다.

이 총장의 사퇴로 서울대는 조만간 후임 총장을 선출하게 된다. 새로 선출되는 총장은 학교 운영 능력 못지 않게 대학을 이끌어 나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도덕성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총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이나 선거에 관여하려는 사람은 이 점에 특히 신경써야 할 것 같다.

손효림기자 사회1부 arys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