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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5월 2일 0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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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 때 환자의 면역계가 이식된 장기를 공격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환자의 면역체계를 제공자의 것과 같은 것으로 바꿔 이식된 장기를 공격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1990년대 조혈모세포(줄기세포)가 있는 골수(骨髓)를 이식하면 면역체계가 바뀐다는 점을 알아냈다.
지금까지는 골수이식을 할 때는 백혈병 환자에게 항암제나 방사선을 ‘융단폭격’해서 환자 혈액의 씨를 말린 다음 제공자의 골수를 이식해 왔다. 그러나 장기이식 때 면역반응을 줄이기 위해 이 방법을 쓰면 항암제나 방사선의 부작용으로 환자의 사망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까지 학계에는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를 이식한 뒤 몇 년이 지나 장기이식을 시행한 사례가 몇 차례 보고돼 있다. 그러나 이들 경우는 항암제나 방사선의 부작용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치료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 장기 이식 때 골수를 동시에 수혈해서 장기를 보호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에 그쳤다.
문제를 해결한 열쇠는 의학계에서 ‘트로이의 목마’라고 부르는 ‘미니이식’이었다.
미니이식은 조혈모세포 이식 전에 항암제를 기존 골수이식 방법에 비해 훨씬 적게 투여하면서 대신 장기제공자의 면역세포와 조혈모세포를 동시에 이식, 이식된 면역세포가 환자의 암세포를 죽이도록 하고 조혈모세포는 새로운 혈액과 면역세포를 만들도록 하는 것.
이번 시술법은 다른 난치병을 극복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난치병의 경우 조혈모세포 이식 전에 항암제를 투여하지 않아도 되므로 더 쉬울 수 있다.
그러나 ‘미니이식 후 장기 이식’은 혈액형과 면역체계가 같은 사람에게만 적용할 수 있어 누구에게나 시행할 수 없다는 점이 아직 장벽으로 남아 있다.
이번 수술에서 환자와 장기제공자는 혈액형이 O형으로 일치했다. 골수이식 때 조직형이 일치하는지를 보기 위해 검사하는 사람백혈구항원(HLA) 6쌍이 모두 같았다.
학계에서는 이 치료법의 효용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서울대병원 서경석(徐敬錫) 교수는 “현재 면역억제제가 거듭 개량되어 부작용이 많이 줄었다”면서 “면역억제제를 먹지 않은 상태에서 1년은 지나봐야 이 수술법이 기존의 장기이식술보다 낫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