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또 양극화” 장세 심상찮다

  • 입력 2002년 4월 24일 17시 42분


‘오르는 종목만 오른다. 실적이 좋고 재무구조가 우량한 회사여도 중소형주는 덜 오른다. 덩치가 큰 핵심 블루칩이어야 한다….’

최근 장세를 요약한 말이 아니다. 1994년 1월 한국 증시에서 기관화 장세(기관투자가들이 증시를 주도하는 장세)가 본격화했을 때 한 증권사의 증시 분석 자료에 나온 말이다.

지금 한국 증시의 모습이 이와 비슷하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핵심 블루칩만 주가가 오르는 양극화 현상이다.

증권가에서는 “대세를 따라야 한다. 목표를 대형 우량주로 좁혀 잡고 지금이라도 추격 매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지나친 양극화는 장기적으로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도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있다.

▽양극화의 역사〓한국 증시에서 주가 양극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2년 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 증시에 뛰어들면서 만들어진 유명한 ‘저 PER(주가수익비율)주식 혁명’ 때는 저PER 주가 아니면 주식으로 취급도 못 받을 정도였다. 단지 저PER 주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94년 기관이 증시를 주도할 때 고가 블루칩만 급등하는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때 ‘골든칩(블루칩보다 더 훌륭한 주식이라는 뜻)’이라는 용어가 새로 등장했다.

99년 인터넷 혁명 때도 정보통신주가 아니면 증시에서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았다. 이처럼 한국 증시에서 주가 차별화 현상은 계속 반복돼 왔던 현상.

▽최근 증시〓주가가 오른 종목의 개수가 3월 말부터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지수는 오르는데 막상 주가가 오른 종목의 숫자가 준다는 것은 지수에 영향이 큰 대형주만 주가가 오르고 중소형주는 오히려 주가가 하락했다는 것을 뜻한다.

23일 상황이 극단적인 예. 이날 종합주가지수는 전일보다 0.52% 오르는 데 그쳤지만 삼성전자는 4%, 현대차는 7%나 폭등했다. 지수는 올랐지만 주가가 오른 종목은 218개로 하락 종목(583개)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대형주의 주가만 오르고 중소형주는 ‘죽을 쑨’ 모습이다.

▽반드시 좋을까?〓몇몇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양극화 장세로 인해 주가에 거품이 형성될 가능성이다. 92, 94, 99년 모두 ‘어느 종목만 간다더라’는 심리가 형성되면서 투자자가 오르는 종목에만 대거 몰렸다. 결국 저PER 주, 블루칩, 정보기술(IT) 관련주 등 주도주 주가에 대해 거품 논란이 시작됐고 이들의 주가가 일거에 무너지면서 전체 증시도 대세 하락으로 접어들었다.

최근 증시도 이런 염려를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상황. 김대중 SK증권 애널리스트는 “급격한 주가 차별화는 필연적으로 고평가 논란을 불러오며 이는 전체적으로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준범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지금 같은 양극화 장세에서 핵심 우량주의 상승세가 한번 꺾이기 시작하면 전체 지수 흐름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차별화 현상은 시장의 질적인 측면에서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양극화 장세의 역사
연도성격특징
1992년저PER주 혁명외국인의 한국 증시 투자 본격화. PER가 낮은 종목에 대한 외국인의 집중 투자를 계기로 저PER주의 주가 급등. 태광산업 대한화섬 한국이동통신 등이 시장 주도
1994년골든칩 장세기관이 증시를 주도. 블루칩보다 더 좋은 주식이라는 뜻의 골든칩을 기관이 집중 매수. ‘기관선호주’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됨. 삼성전자 포항제철 등이 시장 주도
1999년IT, 인터넷주 혁명산업구조의 변화에 대한 기대로 IT와 인터넷 관련주 급등. 99년 말부터 코스닥이 거래소를 제치고 시장의 주도 시장으로 부상. 다음 새롬기술 장미디어 등이 시장 주도
2002년핵심 블루칩 주도3월말부터 기관화 장세가 본격화하며 삼성전자 현대차 등 핵심 우량주 주가 급등

900선 이후 주요 종목 상승률 (단위: 원)
구분99년6월28일99∼2000년말 최고치상승률(%)
종합주가지수903.051038.0414.9
삼성전자131,000394,000200.8
SKT172,000507,000194.8
삼성전기 36,300 97,000167.2
한통(KT) 76,600 99,000159.8
현대모비스 9,100 18,450102.7
LG전자 32,400 61,40089.5
현대차 27,800 42,50052.9
신세계 71,700109,00052.0
삼성증권 60,800 84,60039.1
포철141,000183,50030.1
삼성화재 80,200 92,90015.8
자료:교보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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