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훈/˝경찰을 바보 만들다니…˝

  • 입력 2002년 4월 19일 18시 28분


경찰청 건물 안에 있는 특수수사과의 철문은 19일에도 굳게 잠겨 있었다. 용무 때문에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도 신분을 확인하고서야 접근이 가능하다.

그나마 최성규(崔成奎) 전 과장이 해외로 달아난 15일 떼냈던 ‘특수수사과’ 간판은 며칠 전 다시 걸어놓았다.

명색이 경찰 최고의 정예 수사요원들이 모여 있다는 특수수사과가 당하고 있는 망신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찰 총수인 이팔호(李八浩) 청장조차 “바보가 됐다”며 자탄했을 정도다.

경찰 전체의 위신 추락은 물론이고 총수를 ‘바보’로 만든 최 전 과장의 ‘최규선(崔圭先) 게이트’ 연루와 해외도피에 대해 일부 경찰은 “총경 한 명의 비리 사건인데 호들갑을 떤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동안 특수수사과가 보여준 행태를 보면 ‘터질 일이 터졌다’는 생각이 든다.

특수수사과는 2000년 10월 ‘옷 로비 사건’으로 대통령 법무비서관의 지휘를 받는 사직동팀(조사과)이 해체된 이후 그 기능을 상당 부분 흡수했다.

기존의 수사 업무에다 사직동팀이 해오던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무원 비리에 대한 첩보 수집 업무까지 추가돼 인원도 25명에서 36명으로 늘었다.

비선(秘線) 조직이 아닌 공조직에서 투명하게 사건을 처리하자는 취지에서 사직동팀을 없앴지만 결과적으로 사직동팀을 발전적으로 재건(再建)한 셈이 됐다.

최 전 과장은 직제표상의 직속상관인 수사국장이나 청장도 모르게 청와대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하명(下命)을 받았다. 또 직함을 이용해 각종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최 전 과장의 개인 비리가 아니라 ‘국민의 경찰’을 사조직으로 생각해온 권력 시스템 차원의 비리라고 할 수 있다.

경찰 자체의 환골탈태도 필요하지만 권력이 경찰을 하수인으로 여기는 한 경찰은 계속 ‘바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훈 사회1부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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