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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18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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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쌀도 드디어 ‘시장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농림부는 18일 “남아도는 쌀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쌀값이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떨어지도록 해 ‘농사지을 유인’ 자체를 줄이겠다”고 밝힌 것이다. 1950년 시작돼 면면히 유지돼온 정부의 쌀 수매제도도 드디어 끝난다.
정부의 행정력과 시장논리가 맞서는 현상은 은행권에서도 목격된다. 국민은행은 16일 가계대출을 계속 늘릴 것인지를 놓고 내부 토론을 벌였다. 발제자는 “가계대출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시각도 있지만, 가계 빚이 없는 층이 전체 국민의 50%가 넘는다”며 가계대출시장은 결코 놓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자세는 하루 전 발표된 “가계대출 총액이 많거나, 대출증가 속도가 빠른 은행에는 총액한도 대출을 줄이겠다”는 한국은행의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 총액한도 대출은 한국은행이 연리 2.5%라는 낮은 이자로 시중은행에 빌려주는 자금이다. 이자가 워낙 낮은 만큼 줄 때는 당근으로, 뺏을 때는 채찍으로 기능한다.
국민은행의 태도가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국과 시장이 각각 제시한 두 가지의 이익을 놓고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를 따져보겠다’는 의지를 내외에 과시했기 때문이다. 이미 국민은행 내부에서는 총액한도 대출이 좀 줄어들더라도 안전한 가계대출 영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고 한다.
낡은 규정이나 정부 규제 등이 시장의 변화와 그에 적응해 살아남으려는 각 경제주체의 대응을 일시적으로 늦출 수는 있다. 그러나 생산력과 효율의 증대를 가로막는 어떤 시도나 제도도 결국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뉴욕 증시에는 ‘재무부에 맞서지 말라(Never stand against the Treasu-ry)’는 격언이 있다. 이제 한국 금융시장에서 ‘시장에 맞서지 말라’란 격언이 생길 차례다.
김승련기자 경제부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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