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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7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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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회대회는 월드컵이 세계 최고의 스포츠 제전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1회 대회가 몬테비데오 한 도시에서만 열렸지만 2회땐 8개도시에서 17개 경기가 분산돼 치를 정도로 거창하게 성장해 있었다. 이후 월드컵은 횟수를 거듭하며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잡았다.
1934년 5월27일 웅장한 로마 토리노스타디움에서 열린 이탈리아와 미국의 경기(이탈리아의 7-1승)로 막이 오른 2회 월드컵은 대회초반부터 이변이 속출했다. 남미의 강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각각 스페인과 스웨덴에 3-1, 3-2로 무릎을 꿇었던 것. 아프리카의 이집트도 1회전에서 헝가리에 2-4로 패해 탈락, 8강부터는 ‘유럽잔치’가 됐다.
사실상 결승전이나 마찬가지였던 준결승전에선 폭우가 쏟아져 힘의 축구를 구사하던 이탈리아가 잔기술로 승부하던 오스트리아를 1-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아주리군단’ 이탈리아가 ‘전차군단’ 독일을 꺾고 올라온 체코와 결승에서 격돌, 전후반 1-1로 비긴 뒤 연장에서 구와이타의 환상적인 어시스트를 스키아비오가 그대로 골문에 밀어 넣어 정상에 올랐다.
이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오르시는 ‘기적의 마구’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 화제가 됐다.
0-1로 뒤지던 후반 36분 오르시는 달려나오는 체코의 골키퍼 플라니치카를 피해 페널티지역 왼쪽 사각지대에서 오른발로 때린 슛이 동점골로 연결됐다. 슛의 방향이나 각도로 볼 때 도저히 성공할 것 같지 않았던 슛이 골키퍼를 피해 90도 가깝게 꺾이며 골네트로 빨려 든 것. 극적인 동점골로 영웅이 된 오르시는 ‘그 골’을 다시 보고 싶다는 기자들과 축구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다음날 경기장에 나가 같은 장소에서 20여차례 슛을 날렸으나 자신이 만든 전날의 기적을 재연하는데 실패했다.
이탈리아는 이때부터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명장 포치오 감독의 재치있는 ‘인화술’을 바탕으로 갈갈이 찢겨 있던 팀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 아르헨티나 선수인 올시와 몬티 등 공수의 핵을 귀화시켜 전력을 극대화시켜 유럽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대회 총득점은 17게임에서 70골. 경기당 평균 득점은 4.12골로 ‘골잔치’가 벌어졌다. 득점왕은 스키아비오(이탈리아) 코넨(독일) 네예틀리(체코) 등 세명이 4골로 공동 수상. 총관중은 39만5000명.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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