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복거일/놀 준비는 돼 있습니까?

  • 입력 2002년 3월 18일 18시 39분


그동안 주5일 근무제를 추진해 온 정부가 곧 공무원들에 대해 시범적으로 그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근세 이후 대부분의 사회들에서 작업시간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18세기 유럽에서 공장들이 나타났을 때,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하루를 공장에서 보냈다. 지금 앞선 사회들에선 노동자들의 작업시간은 1주일에 40시간 안쪽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도 주5일 근무제는 조만간 도입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변화는 우리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하는 날이 1주일에 하루 줄어드는 것은 큰 변화여서 사회 전체가 그런 변화에 여러모로 적응해야 한다. 그런 적응에는 물론 시간과 돈이 든다. 따라서 주5일 근무제는 정부가 앞장서서 갑작스럽게 강제적으로 도입할 제도는 아니다.

정부의 태도에 대한 항의는 주로 경제계에서 나왔다. 우리 노동자들의 임금이 생산성이나 국민소득 수준에 비해 상당히 높으므로 근무 일수가 갑자기 줄어들면 중소기업들은 어려움을 맞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주5일근무제 도입 성급▼

그러나 주5일 근무제의 충격은 경제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훨씬 깊고 대응하기 어려운 충격은 문화 분야에서 나올 것이다. 주5일 근무제의 2차 효과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우리 시민들의 여가가 크게 늘어난다는 것일 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갑자기 늘어난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부닥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시민들이 늘어난 여가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런 준비에서 중심적인 것은 역시 대중적 오락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중적 오락에서 가장 크게 확충되어야 할 것은 야외 활동 공간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등산, 자연탐사, 오리엔티어링, 캠핑, 사냥, 래프팅, 해수욕, 요트타기와 같은 야외 활동들이 활발해진다. 그러나 야외 활동 공간은 우리보다 훨씬 잘 살고 국토가 넓은 나라들에서도 충분히 마련하기 어려워 자연환경이 큰 손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인구 밀도가 높고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자연 환경의 손상은 이미 심각한 상태다.

따라서 이제는 정부가 정색하고 여가문화를 위한 정책을 세워야 한다. 현실적 정책이 제 때 마련된다면, 비록 눈에 잘 뜨이지는 않지만 시민들의 복지는 금액으로 환산하기 쉽지 않을 만큼 크게 나아질 것이다.

먼저, 우리의 자연 환경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 환경은 시민들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동 재산이므로 경제 원칙에 맞는 적절한 정책을 통해서만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오래 이용될 수 있다.

다음엔, 자연 환경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공중도덕을 지키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영월 동강의 오염이나 바닷가 모래펄의 자동차 폭주와 같은 일들을 방치하는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셋째, 테마파크같은 오락 시설에 대한 투자를 북돋워야 한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에게 디즈니랜드와 같은 시설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이다.

넷째, 시민들이 고급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늘리는 투자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대중적 오락을 위해선 기꺼이 돈을 내므로 대중적 오락에 대한 수요의 증가에 대해선 시장이 빠르게 반응한다. 그러나 박물관, 과학관, 미술관, 콘서트홀과 같은 고급 문화를 위한 시설들은 수익성이 낮으므로 정부의 배려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여가를 잘못 쓰는 국민을 보호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여가가 늘어나면 도박이나 마약과 같은 것에 탐닉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자신과 사회에 해로운 활동에 빠지는 국민을 위해 정부는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테마파크 미술관 등 투자를▼

여가문화는 문화의 기본적 부분이다. 그것은 문화의 모습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나아가 사회의 다른 분야들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주5일 근무제는 여가문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런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듯하다. 학급당 학생 수를 갑자기 줄이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른 까닭에, 교실도 없는 학교에 학생들이 배정된 것과 같은 부작용들이 나온 것은 2차효과나 3차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민중주의적 정책의 위험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여가 문화의 중요성을 정부가 제대로 인식하고 적절한 정책을 마련하는 일은 보기보다 훨씬 중요하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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