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위험한 반미

  • 입력 2002년 3월 8일 18시 19분


“쇼트트랙 경기를 보았나. 야비한 나라 ○○○○ USA / 그렇게 금메달 따니까 좋으냐. 더러운 나라 ○○○○ USA / 이래도 미국이 정의로운 나란가. 도대체 왜 우린 할 말도 못하는가. 우리가 식민지 나라의 노예인가. 이제는 외치리라 미국반대….” 최근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초등학생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는 노래 가사다(‘○○○○’은 영어 욕설). 기성세대라면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만한 수준인데 이건 유도 아니란다. 미국 대통령 이름을 직접 거명해 욕설을 퍼붓는 노래도 있다니까.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편파 판정 때문에 금메달을 놓친 이래로 우리 사회에 반미(反美) 바람이 한결 거세졌다. 그런데 이번엔 반미주의가 퍼지는 양상이 무척 걱정스럽다. 과거의 반미주의는 미국에 광주민주화운동의 책임을 묻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등 정치적 사안을 위주로 한 이른바 ‘운동권 반미’가 대세였다. 하지만 요즘은 맥도날드 나이키 등 미국상품 불매운동에서부터 인터넷상의 반미사이트 확산 등 소비영역 문화영역으로까지 반미주의가 다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반미를 주장하는 계층 또한 크게 확대됐다. 초등학생들까지 이런 가사를 흥얼거리게 됐으니 말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 사회에 반미주의가 내면화 심층화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동계 올림픽 외에도 차세대전투기(FX) 도입사업에 ‘미국 압력설(說)’이 떠도는 등 최근 미국이 우리 국민의 눈총을 살 만한 일이 몇 가지 있었다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감정대응을 해서는 상황만 더 나빠질 뿐이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꾸어 평범한 미국인들이 앞의 가사를 들었다면 당연히 분노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요즘의 반미 분위기를 주도하고 확대재생산하는 이들에게 좀 더 현명하게 처신하라고 권하고 싶다.

▷앞의 가사는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내용도 문제지만 ‘할 말도 못하는 식민지 노예’로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내용도 어린이들에게 크나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자칫 왜곡되고 부정적인 사회인식을 형성하게 될까 두렵다. 오로지 상대방을 욕하기 위한 목적으로 민족주의를 부추긴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민족주의가 아니라 천박한 쇼비니즘일 뿐이다. 그런 민족주의는 나라를 흥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나라를 망하게 한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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