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닉 밴 엑셀의 복수

  • 입력 2002년 2월 25일 11시 20분


닉 밴 엑셀이 결국 덴버를 떠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가 공개적으로 트레이드를 요청한 게 12월 8일의 일이니까 딱 2달 만에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킨 셈입니다. '사고뭉치' 밴 엑셀은 과연 자신이 원하던 대로 이번 PO에서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선보일 수 있을까요?

사실 밴 엑셀의 프로 데뷔는 지금과 달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신시내티 대학 시절 가드로서 많은 기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드래프트 전 있었던 몇 번의 테스트에서 불성실한 플레이를 보이면서 - 심지어 약속된 테스트에 가지않는 엽기적인 행동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 모든 팀의 감독과 코치들이 밴 엑셀의 프로 선수로서의 자세에 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결국 전체 드래프트 대상자 중 서른 일곱번째로 간신히 프로 무대에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만 그가 프로에서 성공할 거라 믿었던 사람들은 당시 거의 없었습니다. 밴 엑셀을 뽑았던 레이커스의 GM이었던 제리 웨스트를 제외하곤 말입니다.

제임스 워시의 노쇠, 매직 존슨의 AIDS 감염 선언으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를 보이던 93-94 시즌의 레이커스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서 PG가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었습니다. 프런트 코트에는 유고출신의 디바치, LA 연고의 잉글우드 출신인 엘든 켐벨, '레전드' 제임스 워시가 있어서 나름대로 튼튼한 팀이었지만 백 코트에는 시델 스렛과 덕 크리스티 밖에 없어서 그 중량감이 매우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당시의 덕 크리스티는 지금 같이 완성된 기량을 선보이기 전이었습니다. 덕이 현재처럼 SG로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토론토 시절부터였습니다) 이 때 185c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선수가 리더로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들의 머리 속에서 레이커스의 PG하면 누가 생각나십니까? 아마도 농구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곧바로 레이커스의 '32번 선수'를 기억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과거나 현재나 레이커스의 PG들은 항상 저 '위대한' 매직 존슨과 비교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은 93-94 시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 해부터 몇 년간 LA 지역의 언론들은 적어도 PG 부문에선 이 팀에 더 보강할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데뷔하자마자 밴 엑셀은 '느려졌던' 레이커스 농구를 다시 '스피드 업' 시킵니다. 원래 당시의 레이커스는 '쇼 타임 바스켓 볼'이란 특유의 공격적인 속공 농구가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하지만 KBL과 마찬가지로 NBA 역시 속공 농구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PG와 리바운드이며, 때문에 매직 존슨이 은퇴한 후 레이커스는 곧바로 자신들의 색깔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여기다 에이스 부재라는 난제까지 겹치면서 이 젊은 선수들은 이런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 때 레이커스에 작고, 섬광같이 빠르며, 대담한 닉 밴 엑셀이 등장했습니다. 첫 해 베테랑 가드인 시델 스렛과 출장 시간을 나누어 가지면서 팀을 리드했던 밴 엑셀은 곧바로 다음 해 스렛을 밴치로 내리면서, 주전 가드 자리를 완벽하게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피닉스에서 세드릭 세발로스가 트레이드를 통해 레이커스로 오면서 레이커스 역사상 두번째의 '쇼 타임 바스켓 볼'이 펼쳐지게 됩니다.

여기서 당시의 멤버 구성을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PG에 닉 밴 엑셀, SG에 엘리베이터 점프를 한다는 ED(에디 존스), SF에 리그의 스몰 포드 중 가장 강력한 리바운드 능력과 빠른 첫 스텝을 가지고 있는 세드릭 세발로스, PF에 막 성장하기 시작한 엘든 켐벨, C에 유고출신의 디바치가 있었는데 이 다섯 명의 공통점은 모두 젊고, 운동 능력이 좋으며,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롤 플레이어란 점이었습니다. 이들의 강점을 살리는 농구를 하기 위해선 수비를 잘해 실점을 줄이는 농구를 하기 보다는, 공수 전환을 가능한 빨리 해서 득점을 늘릴 수 있는 농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 레이커스 농구의 지휘자로서 밴 엑셀만큼 어울리는 선수도 드물었습니다. 우선 밴 엑셀은 리그의 그 누구보다도 더 빨랐습니다.(참고로 당시 별명이 The Quick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아이버슨이나 매버리 정도의 순발력과 스피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다 외곽 능력까지 너무나 뛰어났습니다. 3점 성공률이 특별하게 좋지는 않았지만, 3점 슛 라인에서도 한 발자국 뒤에서 던지는 밴 엑셀의 가공할만한 3점 슛 레인지는 상대팀에게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최근엔 제이슨 월리암스가 '이런 행동'을 많이 하는 편인데 적어도 그 분야에선 밴 엑셀이 제이슨에게 먼 선배가 되는 셈입니다. 무엇보다 밴 엑셀의 가장 큰 장점은 '넣어줘야 할 때 넣을 수 있는 능력(클러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경기가 접전으로 가면 갈수록 밴 엑셀의 농구 감각은 불꽃처럼 피어 올랐고, 그런 그의 플레이는 매주 '플레이 오프 더 위크'에 랭크 되곤 했습니다. 이런 밴 엑셀의 지휘 덕분에 레이커스는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고, 결국 그 해 플레이오프에서 57승이나 거뒀던 강호 시애틀을 격침시키게 됩니다.(심지어 어떤 레이커스 팬들은 이 때의 농구가 레이커스 역사상 가장 재미있는 농구였다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닉 밴 엑셀은 이후 더 이상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게 됩니다.

항상 문제는 그의 시합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레이커스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밴 엑셀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레이커스가 좀 더 성적을 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습니다. 실제로 밴 엑셀만의 재기 발랄한 플레이는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의 좋지 못한 슛 셀렉션은 때때로 팀을 패배로 밀어 넣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팀에선 마치 지난 해 킹스가 월리엄스에게 기대했던 것처럼 밴 엑셀에게 '안정적인 게임 운영'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다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이 입단하면서 팀에선 샤킬 오닐, 에디 존스, 코비 브라이언트를 계속해서 푸쉬하기 시작했고, 밴 엑셀은 그것에 대해 못마땅해 했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만든 레이커스 왕국에서 'No 1'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에게 참지 못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밴 엑셀은 당시 감독이었던 델 해리스와 심한 논쟁까지 벌이면서 팀 분위기를 해치게 됐고, 98-99시즌 닉 밴 엑셀은 덴버의 토니 배티+ 타이론 루와 트레이드됩니다. 아마도 '새 술은 새 부대에'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그 해 레이커스는 팀 역사상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필 잭슨을 영입한 것입니다) 그 결정은 닉 밴 엑셀에게는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덴버 너게츠로 간 닉 밴 엑셀은 이후 그저 약팀의 에이스 정도로 묻혀지게 됩니다. 플레이 스타일 자체도 예전의 팀을 이끌던 플레이는 간데 없고, 오직 자신의 개인 기록에만 신경을 쓰기 시작했으며, 매 경기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감독이나 동료들에 대한 비판을 하는 일은 이제 그의 몫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그래도 밴 엑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우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제 2 의 쇼 타임 바스켓볼'을 이끌던 그 빛나는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을 버리고 우승까지 차지한 레이커스에게 복수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닉 밴 엑셀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댈라스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적어도 돈 문제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는 닉 밴 엑셀에게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이기는 팀의 일원이 되는 것'과 '레이커스에게 복수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서 사람들은 모두들 라프렌츠의 트레이드 속에 닉 밴 엑셀이 '부록'으로 팔려 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며, 라프렌츠는 댈라스의 팀 전력을 상당히 향상시킬 수 있는 선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닉 밴 엑셀이란 '후보' 포인트 가드를 절대로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사람들이 안된다, 힘들다라고 할 때 비로소 힘을 내는 타입의 선수였으며, 올해 플레이오프에서도 그 진가를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해보시길. 프로 데뷔 때도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고, 덴버로 이적한 후에도 모두들 그가 한물갔다고 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94-95 플레이오프 때도 모두들 슈퍼소닉스가 이길 것이라고 말했으며, 보스톤 가든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밴 엑셀이 마지막 슛을 쏘겠지만 성공시키진 못할 거라고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닉 밴 엑셀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자신의 플레이로 맞서 싸워왔으며, 결국 최후엔 그가 승자였습니다. 비록 좀 이기적이고, 성실하지 못한 태도를 가진 선수이긴 하지만 일단 밴 엑셀이 하고자 해서 되지 않았던 일은 없었다는 말입니다.

2001-2002 시즌 플레이오프. 댈라스 매버릭스와 LA 레이커스와의 서부 결승 7차전. 장소는 LA의 스테이플 센터. 98-96으로 점수차는 2점차. 마지막 공격권은 지고 있는 댈라스에게 있으며. 남은 시간은 3초. 이 때 여러분들이라면 댈라스의 어떤 선수에게 볼을 주겠습니까? 덕 노비츠키? 스티브 내쉬? 마이클 핀리? 저라면 과감하게 닉 밴 엑셀에게 볼을 주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승리를 향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적어도 플레이오프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닉 밴 엑셀에 대한 경기에 대한 집념은 그 누구보다도 더 뛰어날 것이 확실하며, 아마도 이런 밴 엑셀의 기대치 않았던 투지 때문에 댈라스 매버릭스는 이번 시즌 창단 최고의 성적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어서 닉 밴 엑셀이 레이커스를 상대로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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