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청이 도지사 선거본부 된 꼴

  • 입력 2002년 2월 18일 18시 09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 밑에서 일하는 전북도청 공무원이 국민경선제의 핵심이라 할 일반 선거인단(공모 당원)의 참여신청서를 도청 내 복사기로 수만장씩 복사한 사실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다. 전북도 측은 별정직인 박모씨가 “튀어보기 위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한 것으로 복사된 참여신청서를 폐기했다”고 하지만 그쪽 말만 믿기는 어렵다. 전북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신청서가 얼마나 일반에 배포됐는지, 박씨가 정말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혼자서 한 것인지 철저하게 조사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제 계획을 보면 전북의 경우 전체 선거인단의 절반인 약 1500명이 일반선거인단이다. 컴퓨터로 추첨을 한다지만 특정후보 측의 지지세력이 공모 신청을 많이 하면 할수록 선거인단에 포함될 확률이 높아진다. 박씨가 그것을 노린 것은 뻔하며 민주당의 다른 경선 후보 측도 방법이나 실행 여부는 어떻든 그런 기대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매우 고약하다. 현직 공무원이 도청 안에서 고속복사기로 선거인단 신청서를 3만∼4만장씩 복사했다니 도청이 도지사의 선거운동본부가 된 꼴이다. 더구나 박씨는 유 지사의 과거 선거운동캠프 출신으로 전북도청에 특채됐다고 한다. 비록 법적인 하자는 없다고 해도 유 지사가 인사권을 이용해 ‘자기 사람’을 공무원 조직에 ‘선거운동원’으로 심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구조적으로 해치는 일이다. 유 지사는 이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공무원조직을 자신의 선거운동에 이용하는 것에도 각 지방단위 선관위는 물론 정부 차원의 엄중한 감시가 요구된다. 말만으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정부는 구체적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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