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영이/부시에 절절매는 고이즈미

  • 입력 2002년 2월 14일 18시 26분


17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이 부산을 떨고 있다.

일본 경기침체 문제가 미일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로 떠오르자 14일 부랴부랴 디플레이션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 이를 위해 예정에 없던 총리 직속 경제재정자문회의까지 15일 소집했다.

하지만 오랜 경기침체를 겪어왔던 일본이 갑자기 사나흘만에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선생님에게 검사 받기 위해 밀린 숙제를 서두르는 초등학생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은 이미 지난해부터 물가 하락으로 인한 경기침체(디플레이션)가 악순환 국면에 접어들었고 부실채권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에는 아시아 각국의 반발을 무릅쓰며 엔저정책을 용인했다.

일본의 움직임을 보면 어떻게든 초강대국 미국의 질책과 비난을 피해보겠다는 초조함이 역력하다. 일본경제가 더욱 악화되면 중국의 세력이 확장돼 미일 안보동맹이나 미국의 아시아전략에 악영향을 주므로 미국의 요구에 적극 부응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이 미국에 절절매는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9·11 테러사건 직후 고이즈미 내각은 ‘대미 협조경쟁’에서 뒤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드러냈다. 미국이 ‘확실한 지지 입장을 보이라(Show the flag)’고 주문하자 ‘일장기를 보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자위대 파견을 밀어붙였다.

일본의 이 같은 태도는 지난해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나서 한일, 중일 정상회담 때 보여준 뻣뻣한 자세와는 너무나 다르다.

미국의 우려가 아니더라도 일본의 경기침체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일회담에 맞춘 졸속 대책보다는 환부를 도려내는 근본적인 구조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진정한 경기 회복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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