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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월 29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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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에서 작은 화제가 되고 있는 어느 40대 회사원의 글은 휑한 중년의 자화상이다.
회사의 부장은 바로 이런 ‘비틀거리는 중년’을 상징하는 직급이다. 조직의 책임자급으로 적잖은 권한을 갖고 있지만 옛날의 부장 같은 ‘권세’는 없다. 임원의 전 단계지만 전망은 갈수록 불투명하다.
‘50이 되기 전에 뭔가 하긴 해야 할 텐데…’라는 막연한 불안이 만성병처럼 가슴에 들어앉아 있다.
진급 3년째인 이 부장(45·두산)은 15년 전 입사할 때 그렇게 높아 보이던 부장이 돼 보니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가끔 술이라도 한잔하자고 청해도 약속이 있다며, 또는 자기들끼리 어울리겠다며 빼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내가 너희들만할 땐 부장의 한마디는 곧 ‘어명’이었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권한은 줄어들고 책임은 많다. 잠시도 손에서 떼놓지 못하는 휴대전화는 그를 묶고 있는 보이지 않는 ‘굴레’다.
이 부장의 일상에서 언젠가부터 ‘나’는 사라지고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죠. 아이들 생각, 회사일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을 하게 돼요.”
요즘 그는 딸아이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씨름하면서 무력감을 느낀다. 이 부장은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교육조건이 나은 목동의 고교에 진학시키려고 아이 주소를 옮겨 놓았다.
신문에선 대치동이 어쩌고 하지만 ‘대치동에서 살려면 한 달 가계비가 800만원은 돼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자신의 얇은 월급봉투가 떠오른다.
KT(옛 한국통신) 박근수 부장(43·법인영업단)은 이 부장과 같은 고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부장’이란 자리의 다른 면을 본다.
“부장쯤 되면 직장에서 웬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 아닌가요. 자신의 의지대로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도 어느 정도 갖춘 위치이기도 하고요.”
자신이 지휘하고 만든 계획대로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걸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가 작은 조직의 최고경영자(CEO)라도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그래서 자정을 넘어 퇴근하더라도 별을 바라보면서 ‘나는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처진 고개와 당당한 어깨. 부장은 그런 ‘이중성의 칼날’을 타고 있는 이들이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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