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슬픈 동물원’

  • 입력 2002년 1월 17일 18시 12분


요즘 우리 사회의 트렌드 가운데 하나는 ‘동물 열풍’이다. 방송에서 ‘TV 동물농장’ 같은 동물 프로그램들이 인기다. 서점가도 마찬가지다.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새끼 원숭이를 집으로 데려와 기른 과정을 소개한 ‘다이고로야 고마워’ 같은 책들이 독자의 공감을 얻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동물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동물과의 교감이 아닌가 싶다. 순수한 동물로부터 사라진 인간 본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침팬지 연구가인 제인 구달 여사는 10여년간 탄자니아의 밀림지대에 기거하면서 야생 침팬지를 밀착 연구했다. 처음에 침팬지들은 그가 500m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위협을 느끼고 달아났다. 반년이 지난 어느날 구달 여사는 수십m의 가까운 거리에서 침팬지들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서로 교감이 이뤄진 것이다. 그가 1996년 한국을 방문해 동물원을 찾은 적이 있다. 그는 침팬지들과 눈을 마주치려 했으나 침팬지들은 초점없는 눈으로 벽만 응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동물원을 떠나면서 우리 관계자들의 손을 잡으며 “침팬지들을 꼭 구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 동물원에서 ‘구출’이 필요한 동물은 침팬지만이 아니다. 최근 한 단체가 펴낸 동물원 실태보고서 ‘슬픈 동물원’에 따르면 서울대공원에 있는 상당수 동물들이 열악한 서식 환경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원이 대중에게 동물 사랑을 고취시키기 위한 곳이라면 최소한 서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옳다. 그렇다고 부족한 동물원 예산을 늘리고 시설이나 인력을 보완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동물과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물 보호론자들은 약자에 대한 동정심과 사랑의 정신에 따라 동물을 보호하자고 호소한다. 하지만 구달 여사는 보다 현실적이다. 그는 “인류가 침팬지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인류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의 질병 치유 등 유전자와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인간과 같은 조상인 침팬지를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지구상에서 침팬지와의 공존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일만은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 해당되는 문제일 것이다. ‘슬픈 동물원’에서 또 한번 인류의 오만과 자연의 위기를 실감한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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